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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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입력 : 2021. 08.12(목) 13:19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에필로그



이 글을 시작한 지가 어언 15년이 넘었다. 처음 초등학교 동창 카페에 글을 올릴 때만 해도 같이 했던 추억을 공유하고자 두 달이면 충분하겠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유의 마음보다 글쓰기로서의 부담으로 변했고, 묵히고 묵힌 것을 써내려갈 때마다 세월이 하염없이 흐르고 말았다. 그리고 마무리했다는 의미보다 뭔가 부족하고 허전하고 아직도 써야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는 부담감만 커져버린 것이다. 기억이 가물거리는 것도 있지만 아마 쓰지 못한 것도 있으리라.

유년의 기억 속 나무들은 지금도 크고 있고, 수십 년의 세월을 에돌아 와 다시 귀향한 나는 벌써 한 갑자를 넘어섰다.

꼭 써야 할 이야기 중에는 추석 전야의 강강수월래나 설날 아침의 풍경, 친척 제삿날이면 다녔던 단자의 풍습, 비석치기나 팽이치기 같은 어릴 적 놀이에 대한 추억도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한 추억들은 마무리되고 더 이상 써볼 여력조차 마음에서 떠나고 말았는데. 이 추억들을 공유한 이들이여. 이제 그대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써보고 싶은 글이 있다면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 가느다란 욕망이 굼틀거릴 뿐이다.

내 집 저 건너에 휘돌아가는 조그만 냇가에서 내 저린 바지를 빨아주던 순이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늘 가난에 쪄들어 봄이면 버찌와 오디를, 여름엔 풋감을 우려, 가을엔 벼이삭을 주워. 겨울엔 고구마로 끼니를 잇던 연님이는 잘 살고 있는지.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고생선생님의 달은 아직도 그 고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지. 한때, 나의 옛사랑이었던 그녀는 캐나다에 머물고 있다는 풍문도 들었는데. 다들 보고 싶고 한번쯤 만나고 싶구나.

순수하고 철없는 시절을 추억했던, 사립문을 이제 조용히 닫아야겠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떠나고 나만 외롭다.

[그림=김덕남]
편집자 주 : 이상으로 <추억의 사립문>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