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인맥

기고
다산 정약용의 인맥
  • 입력 : 2021. 08.26(목) 17:42
  • 영암일보
월봉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 광주문인협회 이사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천리에서 남인 계열 나주정씨 정재원과 해남윤씨의 셋째아들로 1762년에 태어났다.

7세에 시문을 지어낸 타고난 천재였다. 형제 모두가 소과에 급제했고 조상 8대가 홍문관 옥당을 배출했다. 15세 때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의 서적을 접하고 크게 눈을 뜨게 되었고, 친구이자 사돈 관계인 큰형수의 친동생 선진 지식인 이벽을 만나서 천주교를 접했다. 천주교의 이승훈이 매형이요, 황사영은 조카사위다.

다산은 22세 때 진사시험에 장원하여 국립대학인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성균관을 들른 몇 차례 토론을 거쳐 다산의 박식함을 발견한 정조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게 되어 수많은 독대와 밤을 지새운 토론은 다산의 학문을 한층 성숙케 했다.

‘군주일통론’을 주장하며 세상천지에서 자기가 가장 뛰어난 학자라고 자처한 8만권의 독서광인 정조에게서 정치·경제·철학·법률·의학·과학기술을 배워 훗날 수원성을 축조할 때 이용한 유형거와 거중기도 고안했다.

28세에 대과에 합격, 홍문관교리를 거쳐 경기도 암행어사를 명받고 백성의 고통을 목도한 후 경기감사였던 달성서씨 서영보와의 질긴 악연도 시작되었다.

강진에서 유배시절 목민심서, 경세유포, 흠흠신서, 의방유취 등 실학을 집대성한 503권의 ‘여유당전서’를 남겼다. 농사도 지으면서 제자를 모아 가르쳐 이청, 황상 등 후학도 길러냈다.

다산의 인맥을 살펴보면 거의 남인들끼리 얼키설키었다.

특이한 사실은 친가인 정약용의 5대조 정시원이 유교만이 아닌 유·불·선 등에 박학다식한데다 의학에 조예가 깊었고 각종 서적을 많이 남겼기에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정신적 스승이었던 이익의 조부 이하진이 청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업무를 잘 봐 보너스를 받았는데 모두 신서적인 기기도설, 천주실의 등 신학문의 서책을 구입해 손자인 성호 이익이 깨우침을 받아 종손 이가환 등을 통해 다산에게까지 전수되었던 것 또한 큰 밑거름이었다.

학맥을 추적해보면, 성호 이익의 수제자가 권철신, 권일신 형제다. 권철신은 정조의 사부에 정약전의 스승이었고 권일신은 정약전의 장인이었다. 권철신은 정조에게 다산의 천재성을 늘 언급해 정조의 머리에 남아있던 중 진사과 장원을 한 답안지가 결정적이었다.

15세에 홍혜완에게 결혼 풍산홍씨 일가의 많은 서적을 탐독 배경지식을 쌓았다.

18년 유배시절에 읽었던 외가인 녹우당의 수천 권의 책들은 중국을 오가는 서적을 실은 배가 파손해 어부들이 책을 건저내 해남윤씨 종택에 팔았던 고서들이었다. 또한 조선시대 최고의 책 장사 조신선과 유대가 깊어 다산이 필요한 책을 모조리 구해주었다. 조신선은 특이한 상법으로 책장사를 한 조선 최대의 서상이었다.

처가 쪽 동지 홍국영은 혜경궁홍씨의 6촌인 홍낙춘의 아들로 그 천재성을 혜경궁이 언급, 정조에게 소개해 다산까지 연결되었고 규장각 검서관들도 권철신과 다산이 소개해 발탁되었다.

영의정 채제공도 사돈 간이었다. 체재공의 서자와 정약용의 배다른 여동생인 장성의 김해김씨 소생의 딸과 결혼해 사돈 간이었다.

수원 화성 설계 시 정조는 전국의 수령에게 고을의 읍성설계도와 보강설계도 2장을 제출토록 하명해 소극적인 수령을 파직시키고 설계도 600장을 다산에게 넘겨주었기에 10년 공사를 2년 9개월 만에 완성했다. 축성의 최고 책임자는 수원 유수 체재공, 설계자 및 현장소장은 다산, 고문은 정조였다.

추사 김정희와 차의 대가 초의 선사는 둘째 아들 학유의 동갑내기 절친들이었다.

아무튼 다산의 곁에는 기라성같은 당대 각계의 천재들이 있었기에 그의 학문이 집대성해 ‘조선의 르네상스’가 펼쳐진 것이다.

▲ 수원 화성 축조 당시 사용된 거중기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