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3)

기고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3)
  • 입력 : 2021. 09.02(목) 13:07
  • 영암일보
금정면 이영주 면장

돈을 벌기 위해 일할 때는 일이란 힘든 것, 하기 싫은 것으로 생각됐는데, 국민을 위한 봉사자요, 세상을 바꾸는 창조자라고 생각하니까 일이란 즐거운 것, 하고 싶은 것이 되는 거야. 야근은 노동이 아니라 내가 일을 가지고 노는 거였어. 이 정도면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공무원이 나의 천직이 된 거 맞지? 게다가 내가 능력이 있어서 공무원이 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란 직업이 나의 능력을 엄청나게 발전시켜 준 거야.

이렇게 나는 ‘새로운 나’, ‘행복한 나’로 다시 태어났어.

‘1998년 10월 1일 인사발령, 재무과 지방행정주사보 이영주 총무과 대기.’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

공직 10년 만에 나에게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어.

1997년 IMF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지. 국가 경제에도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공직사회에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이 있었어. 인원감축을 해야 하는데 징계받은 사람, 불친절한 사람, 사생활이 문란한 사람 등 해고해야 할 대상들에 대한 소문이 많았어. 나는 10년 동안 한 번도 징계를 받은 적이 없고, 나름대로 다른 사람보다 친절하고 스스로가 불편할 만큼 도덕주의자였던 터라 절대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완전히 나만의 착각이었지.

1998년 10월 청내방송으로 인사발령자를 발표할 때 내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방송을 듣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이름이 나오고 중간에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내 이름이 나오는 거야.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기절할 뻔했어. 아니, 기절한 거나 같았어.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엄청난 충격이었지. 어렸을 때 많이 아파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몸속의 모든 피가 머리로 쏠렸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고개도 들 수 없었고 사무실 동료들이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못 하겠더라.

왜 내 이름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어. 1시간쯤 지나 이유라도 알고 싶어서 인사부서로 갔어. 나는 이미 시체가 되어 화를 낼 수조차 없더라. 담당자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안하다고 하더라. 이것은 사람을 죽이려다 죽을 만큼 심한 상처를 주고는 겨우 살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나 같게 들렸어. 이유를 듣고 나서는 더 미칠 것 같았어. 꾹 참았지만 하마터면 사무실을 다 부술 뻔했지. 그 이유가 7급 중에서 4명을 대기시켜야 하는데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이 3명밖에 없었대. 한 명을 더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이가 제일 어린 나를 택했다는 거야. 이유를 듣고 나니 더 분하고 억울하고 죽고 싶었어. 지금 생각하면 한 번쯤 난동을 부릴걸 하는 생각도 들더라. 너 같으면 어떻게 했겠니?

지금까지 입사 성적도 좋았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바른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잘한다는 칭찬만 들었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

지금 같았으면 군수님을 찾아뵙고 억울하다고, 살려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그때는 이미 그 상황 자체가 나를 죽이려는 것처럼 너무 두렵게 만들어 버린 후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라.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겠지?

숨쉬기도 어려운 순간에 2가지 결정을 해야 했어.

대기발령은 쉽게 말해 그만두라는 말인데….

첫째, 그만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어.

제일 친한 형님께 물어보았지.

“끝까지 버텨라. 왜냐하면, 네가 지금 그만두고 나가서 이보다 더 월급을 많이 받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직장을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또 네가 앞으로 승진을 하지 못하고 7급으로 정년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대학까지 모두 보낼 수 있고, 결혼도 시킬 수 있다. 쪽팔림은 한순간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 다른 능력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정말로 현실적이고 명쾌한 답이었지.

한 가지는 결정했어. ‘여기서 죽이려 해도 버티겠지만, 나 스스로는 절대로 죽지 않겠다’라고.

또 한 가지는,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뭔가 잘못됐다는 거였어. 그것을 찾고 고쳐야 했지.

“이영주, 너는 어떤 사람인가? 정직, 솔직, 정의, 유머, 성실, 책임, 완벽주의, 합리적, 긍정적인 사람… 모두 좋은 말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당시 나는 잃을 것이 없어서 자유분방하게 생활했었지. 공직사회는 부정부패와 비리, 관료주의가 강했어. 완벽주의자에 부탁하기 싫어하고, 나름 정의감이 강해서 옳지 않은 일을 보면 참지 못했어. 아니, 참지 않았지. 10여 년간 선배님들에게 바른말과 따지기를 많이 했던 거야.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싸가지가 없는 놈이었어.

(다음호에 계속)





- 책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 중에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