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에 반한 옛 선비들 이야기

칼럼
월출산에 반한 옛 선비들 이야기
  • 입력 : 2021. 10.25(월) 07:42
  • 영암일보
김오준 광주문인협회 이사
‘월출산'은 영암군의 남쪽에 있다. 신라 때는 월나산이라 불렀고, 고려 때는 월생산이라 부리었다. 외화개산이라 칭하기도 하고, 혹은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하며 조계산이라고도 불렀다.
구정봉은 월출산의 산봉우리다.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높이가 두 길이나 되고, 곁에 한 구멍이 있어 겨우 사람 하나가 드나들수 있는 통천문이다. 이 통천문을 지나야 꼭대기에
오를수 있다. 통천문을 지나면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데, 그 편평한 곳에 오목하여 물이 담겨 있는 동이 같은 곳이 아홉이 있어 구정봉이라 이름 붙였다. 가물어도 물은 마르지 않는다. 속설에 아홉 용이 그곳에 있었다고 전한다. 동석은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다. 특히 층암 위에 서있는 세 돌은 높이가 한 길 남짓하고 둘레가 열 아름이나 되는데, 서쪽으로는 산마루에 붙어 있고, 동쪽으로는 절벽에 임해 있다. 그 무게는 비록 천백 인을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움직이면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암이라 칭하고, 영암군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월출산은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다. 고려시대 농민시인 김극기가 월출산에 올라 월출산의 기기묘묘함을 '김거사집'에 생생하게 묘사했고,
조선 초기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도 감탄의 싯귀를 남겼다.
또한 무오사화때 부관참수된 점필재 김종직은
'등불 켜고 자리 걷지 않은 채 밥 먹고 서성대는 것도 괴로운데, 월출산 꼭대기에 햇빛이 비치도다. 뭉게뭉게 들구름은 동혈에서 걷히고, 삐죽삐죽 가을 산은 하늘에 솟았구나. 뜬 인생이 반 넘어 살도록 이름 들은 지 오래면서, 절정에 올라보지 못하였으니 세상일 바쁜 것이라. 가야산과 방불한 것 참으로 기쁘니, 무단히 마상에서 고향을 생각하게 하노라.’ 라고 월출산에 오른 감회를 읊었다.
구정봉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정상인 천황봉이다. 월출산은 천황봉보다 구정봉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조 17세기는 노론과 소론의 붕당 정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당쟁에 휘말리든지, 아니면 조용히 초야에 묻혀 선비로 사는 삶을 선택해야 했다.
조선 후기 노론 계열 권력자 김창협도 영암에 유배 중인 노론의 영수였던 그의 아버지 영의정 김수항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가 월출산 구정봉에 올랐다. 그의 나이 25세 때인 1675년(숙종1) 7월에 월출산을 처음 올라 ‘월출산 구정봉기’를 남겼다. 총 215자의 유산기를 남겼다. 월출산의 험준함과 기괴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후 천리길 마다 않고 김창협은 4차례나 월출산을 즐겨 찾았다 한다. 9
소론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도 78세의 고령에 구정봉에 올랐다.
도교에 심취했던 허목은 월출산에 올라 유산기를 남겼다. 허목은 유산의 동선을 명확히 밝혔다. 허목의 유산 코스는 도갑사→용암사→구정봉→구절폭포→청정대→죽사를 거쳐 여정을 마친 기록의 ‘월악기’를 써 윌출산이 한양까지 남도의 명산으로 유명해졌다.
월출산은 삼국시대부터 유서 깊은 산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대사.중사.소사로 나누어 나라에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월출산은 소사에 해당했다. 당시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은 월나악이요 고려사에서는 월생산으로 문헌에 등장한다. 조선시대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는 지금의 월출산으로 개명되면서 정착한다. 민간에서는 외화개산, 소금강산, 조계산, 금산, 금저산, 천불산, 지제산, 월산, 보월산, 낭산 등으로 불렸다. 지명이 총 13개나 된다. 이름이 많으면 사연도 많다. 월출산의 사연은 암벽 봉우리와 연관된다. 특히 구정봉과 그 주변은 많은 관련 설화를 전한다. 김종직이 월출산을 노래한 시에 나오는 가야산은 만물상을 염두에 둔것 같다.
월출산의 여러 지명 중 최초의 지명인 월나악은 당시 행정지명이 월나군이었다. 월나군에 국행제를 지내는 산, 월나산인 것이다. 고려 때는 월생군으로 바뀌었다가 고려 성종 때는 낭주라고 일시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월생산과 낭산이란 지명도 등장한다.
외화개산은 평야에서 우뚝 솟은 암벽 봉우리가 구름에 가린 모습이 마치 꽃봉오리를 덮은 형상 같다고 해서 중국에서 불렸던 것으로 추정한다. 또 도갑사 사적에 ‘구름이 항상 월출산의 제일 높은 곳에 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겨 화개라 불렀다’고 전한다. 정상 봉우리만 구름 위로 솟아 있는 모습을 꽃에 비유한 것이다. 소금강산은 호남의 금강산을 빗댄 말이고, 천불산은 암벽 바위의 기기묘묘한 형상을 가리킨다.
전부 암벽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그렇게 보면 월출산은 달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영암이란 지명이 유래한 바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또한 월출산은 달과 관련된 산이다.
가수 하춘화의 '영암아리랑'이
힛트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달’을 사용하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月’로 바뀌었다. 월출산은 달출산, 달산 혹은 돌출산, 돌산 등으로 불리다가 월출산으로 정착 되어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저자약력]
금정면 출신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원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