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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는 간디의 소금길 같은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매년 이인영 의원실에서 접경지역과 민통선 등을 걷는 행사를 주관했다. 행사 참가를 신청하고 걷는 신발(트레킹화) 등을 모두 구입했으나, 선발되지 않았다.
“망치를 가진 사람 눈에는 못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걷는 장비를 갖추었던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인터넷에 ‘깨달은 시민의 국토대장정’에서 걷는 행사가 눈에 들어온다. 세종에서 임진각까지 11일 간 전 구간을 걸었다. ‘발휘제’에서 경기평화누리길을 걷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세 번째부터 참가하여 걷고, 나머지 한 길은 ‘통일의병’과, 한 길은 아내와 둘이서 걸었다.
점차로 걷는 것에 대한 자신감과 재미가 붙는다. 2020년 12월 31일 마지막 구간인 평화누리길12구간을 걸었다. 2021년에는 강원도 평화누리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었다. 철원과 화천은 격주 간격으로 한 길(구간)을 걸었다. 인제군부터는 한 달에 한번 걷되, 1박 2일로 두 길을 걸었다. ‘평화로 가는 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걷는 길이 공개된 길 외에는 제한된다. 철원2길은 이길검문소에서 막혔다. 화천4길은 안동철교를 멀리서 보고 돌아서야 했다. 두타연은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6월 달에는 통일부에서 주관하는 ‘DMZ 평화의 길, 통일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통일부 행사는 국방부와 협조해서 군 통제로 가기 힘든 우리의 땅을 걸을 수 있다. 병사들이 밤새워 지키는 철책선을 따라서 걷는 소회는 남다르다. 이렇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는 길 이름은 ‘평화가 오는 길’로 붙였다.
접경지역을 동서로 두 번 횡단하면서 한반도 현실을 몸으로 체험했다. 한반도 시계는 1953년 7월에 멈춰있다. 우리 주권이 우리 영토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있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10년을 신을 줄 알았던 신발 밑창을 두 번을 갈았다. 동서횡단은 단체행사가 있으면 또 참가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국토전체를 대상으로 걸으려고 한다.
예로부터 선조들이 터전을 삼았던 땅,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화랑, 보부상, 박문수 어사, 김시습 시인 들이 걸었던 산천이 있다. 조상들이 남부여대하고 5일장을 보러 걸어갔던 마을과 길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마치고 다시 부임했던 행군로가 있다. 동학군이 사발통문을 돌리던 통신로가 있다. 걷다보면 이런 길을 만날 것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님은 방방곡곡행행진方方谷谷行行盡 수수산산개개지水水山山箇箇知라고 표현하셨다.
‘마을공화국’에서 만난 마을활동가에서 영감을 얻는다. '길따라 마을따라 평화의 길'로 이름을 지었다. 가능하다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시민단체와 교류하면서 마을 민주 평화와 통일을 새기면서 '우리 모두 함께' 정신으로 걸을 계획이다. 고흥에 사는 마을활동가분이 초청해 주셔서 벌써 고흥 길은 마쳤다. 고흥길이 내가 생각했던 바로 그 길이다.
길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걸은 길을 따라가면 된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서 가면 된다. 중동지역도 북아일랜드도 평화의 길을 가고 있다. 간디의 소금길이 인도 역사를 바꿨다. 나도 작은 날개 짓을 시작한다. 언젠가는 태풍이 될 것이라는 간절함으로 '길 따라 마을 따라 평화의 길‘ 걷기는 계속된다.다음 편부터는 시군 단위로 기행문을 올릴 예정이다.
[약력]
예비역해군제독
정치학 박사/수필가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100북스학습독서공동체 이사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예비역 해군 준장
동명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외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서울특별시 안보정책자문위원
영암일보 논설주간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