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해체에 관한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

기고
여성가족부 해체에 관한 페미니즘에 관한 담론
  • 입력 : 2022. 02.09(수) 10:46
  • 영암일보
김충렬
글랜맘 칠드런 재단 한국 대표/정치학박사


울지마라, 웃지마라, 이해하라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 해방 정치학


1. 인간 페르소나의 함정

지난 2년 동안 우리의 모든 일상은 팬데믹이 지배하고 있다. 정확히 하자면 팬데믹이 과거의 작별이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 중이고 내일에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간 존엄을 쓸모없이 만들고 자신의 일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품위 있게 살고픈 삶을 고립시켰다. 적어도 불평등을 겪는 소수자, 낮은 계급의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낮은 계급의 여성, 소수자만 느끼는 참상일까? 20대 남성 중심으로 대학 때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으로 무장했지만, 아빠 찬스와 자본주의 전형인 아파트 게임에 소외된 많은 젊은이들이 회색빛 유령처럼 도회지를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왜 자신의 일자리가 누군가에게 빼앗겨야 했고 왜 자신이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불평등 심화, 양극화, 고용절벽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하나둘씩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에 모여 그들만의 대중봉기를 위해 모여들고 있다.(토크빌의 민주주의 중우정치비판을 참조)
그들이 바로 대중이다. 이대중은 누군가의 선전이 아닌, 선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공격 대상을 지정한다. 이러한 행위가 표를 얻기 위한 선동의 정치인, 단합하는 보수 언론들 남녀 갈등을 통해서 일자리, 임금 조절을 통해 자기 이윤을 확장하려는 자본가 계급(다국적 기업, 슈퍼리치)의 덫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마르코스의 정치경제학의 수고 참조)

소외된 자들은 말한다.
소수자를 배려하는 여성할당제, 소수 할당제가 우리의 일자리를 강탈했기에 의식적 봉기를 해야 한다, 주장한다.
그 결과 20, 30대 일자리 게임에서 상실감이 큰 남성 집단을 향해 보수 권력자들은 여성 보호의 악마의 뇌인 여성가족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귀착점에 포효를 하고 있다.

2. 도전받는 여성혁명
여성과 남성의 구별인 sex(성구별), Gender(사회적 성), Sexuality(성 정체성) 마저 무시된 채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투명한 실상은 세계의 반쪽인 여성이 세계의 생산노동에 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 그 대가로 여성은 세계자산의 3.8%만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뿐인가? 인도, 스리랑카, 아랍, 미얀마, 남미에서는 여성이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보호를 못 받고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전유물로 살게 하기 위해서 여성 성기의 중요 부위를 할례를 통해 성적 만족을 상실케하는 야만적 형태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외적 선진 자본가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아프리카, 남미, 동아시아에서 세계은행이 큰 역할을 한다. 다국적기업에게 저금리로 돈을 빌려줘서 값싼 농토를 확보해 대규모농장으로 탈바꿈한다. 그 결과 농토를 잃은 노동자는 값싼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장 지글러의 인간섬 유럽 참조)
유럽의 생산단가 싼 거대한 잉여 농산물은 남미와 아프리카 농산물 가격의 1/3수준의 가격에 팔려서 온종일 때악볕에 노동의 생산물을 더 싸게 팔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여성 어린이들은 최소한 생존을 위해 마지막 수단인 몸을 팔 수밖에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의 딜레마에 빠진다.(아프리카의 농토에서 평균 1헥타에 650Kg 유럽의 농토에서는 평균 1헥타에 5000Kg을 수확한다.)

페루의 알렌시아 빈민촌에서 자신의 농산물을 시장에서 싸게 판돈으로 다국적 기업의 단합으로 가격이 오른 쌀을 사기 위해 미르시에는 1시간 줄을 서서 겨우 2홉의 쌀을 샀다. 사온 쌀이 가족들에게 유일한 한끼의 죽이 되어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선진 자본가 국가 정치가들은 그 국가의 정치 경제 후진성에만 문제를 돌린 채 세계적 언론사와 똑같이 입을 꾹 다문채 침묵..... 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침묵, 카르텔인가, 몸서리 쳐진다, 이것이 바로 엘리트의 함정이다.

물론 이것은 다른 국가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하는 인간의 4가지의 죄 형법적, 정치적, 도덕적, 형이상학적 죄를 모두 인간 원죄로 확장시킨다면 우리도 이 야만의 가해자의 지위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평생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경계했던 페미니스트(Feminist)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필생의 과제가 아모르 문디(amor mundi), 즉 ‘세계를 사랑하라’가 아닌가.
이 실천적 과제를 통해서 그녀는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머무름을 실행했다.

그녀는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욕은 악이지만 절대악은 아니다. 그러나 절대악은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옳고 그름 없는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형태가 바로 절대악이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부드러운 전체주의 절대악 유령이 우리를 포로의 심상으로 내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과거와 비교해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는 진취적 성과물을 얻어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공적 부분의 지위와 권력 습득 과정, 사적 부분의 육아와 가사노동의 부분에서 여성의 지위는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과학적이고 실증적 데이터로 남녀 소득과 권리의 균형비를 근사치 맞추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하겠다.

3. 페미니즘의 철학적 토대
이러한 여성의 권리의 통제력 강화시켜 여성의 자아실현을 돕는 철학적 토대의 페미니즘이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liberal Feminism)의 대표주자인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에게만 주어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인식
마르크스 페미니즘(Marxist feminism)에서는 여성이 생산을 위한 노동, 생식 번식(육아 가사노동) 노동에서 모두 차별받는다 주장했다.
오늘날에 포스트모던 페미니즘(Postmodern feminism)에서는 동성애, 트랜스젠더의 선택에도 국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로운 선택을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 사회의 핫이슈인 변희수 하사의 성전환의 정체성 문제를 포용하려는 법원의 판단은 서구 유럽의 페미니즘 기준에 다가가고 있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급진적 실존주의 페미니즘(existentialism feminism)의 백미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오늘날 페미니즘의 철학 담론을 대표한다 하겠다.

그는 여성은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 관습에 의해 수동적 의존성 대상화로 길들여진다. 직업과 경계적 독립만이 여성의 자유와 자주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을 잘 짜인 피륙처럼 밀도 있고 지식인들에게 신경안정제와 흥분제를 동시에 요구했던 지적 사람의 병적 측면에서 오늘도 회자되고 있다 하겠다.

4.페미니즘의 실천적 지성
인류 역사에서 모계사회에서 잉여 생산물의 축적으로 더 많은 여성을 요구하는 부계사회에서 여성은 아웃사이더로 전략한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키 150cm 절름발이 로자 룩셈부르크는 여성이 마르크스의 기계론적 유물론에서(mechanical materialism)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늘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자는 자기를 옭아멘 사슬을 눈치채지 못한다.(Those who not move, do not notice their chains)
그는 짧은 생의 과제인 민주주의 대한 열망, 실천을 최고의 가치 덕목으로 제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22살 나이에 당시 독일 철학의 거두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을 소수자 보호를 포기한 수정주의자라고 거칠게 밀어붙여 일약 독일의 스타로 부상한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마저 그를 유럽의 붉은 독수리로 칭송했던 그녀가 1919년 1월 15일 저녁 8시 10분 모두에게 열려있는 베를린 광장에서 총 개머리판에 머리가 가격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후 혼돈의 시대를 맞이한다. 패전의 이유를 찾아헤메든 대중은 그 이유로 공산당, 유대인의 첩자 노릇 패문이라고 믿는다.
한 시대의 유럽의 실천적 지성인, 약자의 대변자인 절름발이 로자는 핏빛 광기의 한발의 총성으로 인류자산의 보배를 민중은 스스로 묻는다, (로자가 유대인 공산당원이였음.)

인류 역사는 늘 반복의 대자뷰 아이러니이다.
시저의 가슴을 찔러던 블루터스의 칼 간디의 가슴에 박혔던 총알 링컨과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했던 총알, 유럽에서 흑사병의 원인이 집시의 더러운 마녀라며 백만 여성을 거꾸로 매달아 측백나무 연기로 질식시켜 죽였다. 이 모두 같은 연결고리이다.

5. 거인의 발자국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 의해 사람들의 시선을 한쪽으로 향하게 하고 스스로 희망을 구원하며 복종을 다짐하는 물결에 물들어 있지 않는지 늘 성찰하여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평생 꿈꿨던 “울지마라 웃지마라 그러나 이해하라” 이 3마디 명사가 얼마나 값지고 빛나고 찬란한가?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가 1670년 정치신학론 중심에 썼던 글귀를 로자는 발견해 평생 알처럼 품었다. 그래서 간결함이 위대하다. 평생 독신으로 안경렌즈를 깎으며 치열하게 생존했던 기술자답게 객관적 분석 이성적판단 전체를 보는 통찰을 통해서 답을 얻으려 했던 응축된 담론이다.

우리는 이 성과물의 담론을 여가부 폐지와 젠더 갈등 문제를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인 동양사상의 중용, 불교의 중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에 우위인 중용의 개념을 통합하여 이성의 지혜로 풀어야 한다.

내가 미친 듯이 사랑하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가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가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모두 가장 고독을 선택했고 가장 깊이 자신을 숨겼으며 거대한 권력에 아웃사이더로 늘 경계의 지평선(Horizon of boundaries)으로 격리되었기에 난 그들을 존중한다.

값싼 이름에 집착하는 인텔리겐차들은 허영과 가식에 집착한다. 하지만 그들은 매화 향기 같은 자신의 철학을 지키고자 하는 실천적 지성을 통해 미련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거룩한 한 인간이다.
나두 이젠 울지 않고, 웃지 않고, 이해하고 싶은 심연의 소나무 관솔 괭이 같은 향기가 나는 로자<붉은 장미>가 있다.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석양 야외 광장에서 난 그녀와 함께 푸치니 오페라 자니 스키키(Gianni Schicchi)의 끝판왕인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 노래를 나딘 시에라(Nadine Sierra)의 천상의 음성을 듣고 싶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피렌체 아르노 강, 베키오 다리에서 몸을 던지겠다는 비장한 여인의 노래를, 난 로자의 모난 것도 관용하고픈 난 페미니스트다.

2022년 02월 09일
金井의 亡名濟에서 片雲野鶴 書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