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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경의로운 창조물이라 했다는 그랜드 캐넌. 협곡에서의 높이가 2112m라니. 지금 내가 와 서 있는 자리가 한라산(1950m)보다 72m 더 오른 높이에 와 있구나.
며칠전(5월 하순)만 해도 이 곳에 눈이 쌓였단다. 내려다보이는 시야에 현기증이 나도록 아찔하다.
협곡엔 영상의 날씨. 인디언 원주민이 생활하는 겨울에도 반바지 반팔차림이라니.
온순한 당나귀로 운송수단을 삼는다는 나귀길이 지그재그로 보이는 구나. 멋스러운 포인트에서 사진을 촬영하면서도 오금이 저리도록 가슴이 떨려온다.
IMAX영화, 서부 개척 시 이곳이 발견되기까지의 변천사를 보다. ‘뗏목’을 타고 협곡을 거센 물줄기를 따라 폭포에 휘말릴 때 내 자신도 그 폭포 속으로 휘말려 버리는 그리고 표범의 기습공격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그리고 또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의 눈을 향해 달려드는 착시현상.
디지털 영상시대의 첨단 과학 기술에 새삼 경탄한다. 출렁이는 뗏목에 실려 부서지는 물결 속으로 소용돌이치는 울렁거림의 공포가 막이 내린 뒤에도 한동안 계속 되었으니.
서부의 중간교통의 중심지 킹맨을 지나고 아름다운 콜로라도강이 흐르는 휴양도시, 라플린, EDGE WATER HOTER, 이곳 역시 호텔 로비 전체가 카지노 천국이다.
모여드는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 개인당 평균 10~30弗, 장난삼아 심심풀이로 하는 오락에 하룻밤 수천억이 오고간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곳은 담배의 천국이다. 물론 객장(오락실)에서도 얼마든지 음주를 할 수 있는 개방. 어쩌면 질서의 파괴가 우리 인간의 마음을 방종하게 만드는 심리학의 병리현상처럼 때로는 들뜨게 하고 때로는 서민의 탈을 벗어난 상류사회의 교만과 자존의 부류에 편승하여 흥청거림 같은 흉내내기에 휘말려버리는 나약한 인간내면의 모순 같은 그 나약한 심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라스베가스가 아닌 또 다른 라스베가스를 닮아가는 라플린, 더군다나 관광하는 사람들은 고급호텔, 고급음식에 눈높이를 상실한 고급 쇼핑 그리고 충동구매, 다들 여유 있어 보이지만 나처럼 산속에 사는 사람에겐 너무나 어울리지 않구나.
애리조나 대평원 지나 LA로
우리의 긴 여행은 계속된다. 다시 넓은 땅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접경을 지나 애리조나 대평원을 지나 6시간, LA에 이른다. 우리의 교민 80만 명이 거주한다는 이국이 아닌 한국의 거리가 있고 할리우드 촬영소, 거대한 분수대 위에 설치된 유니버설의 상징 지구본이 물줄기와 더불어 서서히 움직인다. 촬영 세트장의 설치물들. 역마차 카우보이 갱단과 결투하다 2층 유리문이 통째로 부서지며 탈출하는. 그리고 서부 개척 당시의 허름한 목조건물들, 목로주점 칵테일 바텐들. 생각보다는 조잡하고 초라한 설치물에 실망하면서 할리우드 거리에 나가본다.
유명한 스타들의 손도장, 발 도장. 싸인들, 지금은 다들 고인이 돼버린 그거리 그 보도블록들, 명멸하는 유성의 별똥별이듯 아름다운 한 씬들 만을 기억 속에 추억으로 묻어둔 채. 크라크 케이블, 마를린 먼로, 잉그릿 버그만, 찰슨 브론슨, 제임슨 딘, 비비안 리, 안소니 퀸, 폴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흘러간 영화음악들이 귓전에 맴도는구나. 그리고 그들의 열연이 클로즈업 되면서….
로스엔젤스. 다국적 인종의 용광로이듯 차이나타운의 거리, 한인타운, 멕시칸 타운. 영국으로부터 중국 본토에 홍콩이 반환되면서 대거 몰려온 자본주의 삶을 추구하는 중국인들. 중국의 자금성의 축소판을 옮겨 놓은 듯한 거리의 상징물들. 그들 고유의 색상 진한 주홍색의 건물과 간판들, 상품들….
소림사. 무림사의 무협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용두의 장칼들이 진열되고 화려한 용 무늬색상의 도자기들. 청아하고 단아한 우리의 백자와 청자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일본 거리 역시 고풍스럽구나. 화려하지 않으면서 중후하고 목조건물들의 품격 높은 따스함이 전혀 이질감을 주지 않고 정스러운 따스함을 주는구나. 실내의 집기들도 역시, 그리고 창틀, 부잣집 오래된 간장 맛이듯 맛깔스러운 취향을 느낀다. 그리고 협소하지 않은 집기들의 공간배치에도 전혀 생소함을 느낄 수 없는 평안함에 젖는다. 역시 일본다운, 일본을 우린 배워야 한다.
멕시칸의 거리. 거리 초입에서부터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한 상품이며 진열대, 가죽 제품과 마야 문명의 후예들인 양 원색의 조각품들, 먹거리 식당들. 목조건물들의 엉성함 들 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구나. 이 넓고 광활한 캘리포니아를 미국에 넘겨준 채 한적한 뒷골목 모퉁 길에서 기존 건물도 아닌 하꼬방. 매장으로 전락해 버린 슬픈 모습들은 이방인의 마음에도 걷잡을 수 없는 착잡한 그 무엇들로 가득할 건데, 그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모퉁길 앞에서 파이프 악기에 피리를 부는 사나이(멕시칸) 바구니에 1弗을 넣어준다. 동방의 작은 나라 ‘꼬레아’의 이방인이.
축제와 춤과 정열의 낭만 뒤에 오는 결과가 과연 이런 것일까. 미국이 멕시코에서 이 캘리포니아를 흡수하면서 이곳에 거주하는 그들에게 매달 1인당 1000弗(1,200,000) 씩 지급하기로 법적으로 명시했단다. 지금(현재)도 유효하면서 놀면서도 천불을 지급받으니 삶에 대한 노력, 교육에 대한 열의가 식어져버린 무기력의 인종만 양산할 뿐이지. 문맹이 20%라니.
14~15세에 결혼하여 30대 중반에 손자, 손녀를 얻는다니, 그리고 다산의 멕시코 풍토 때문에 7~8남매를 출산하는 대가족. 우리나라 50년대의 가정이듯 한 가족의 식구가 움직이는 걸 목격할 때마다 고만한 돼지 새끼들이 우르르 떼지어 몰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한 그들이 과연 국제무대에 발돋움하고 나설 수 있을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쌍한 미국의 ‘멕시칸’. 범죄와 청부살인과 거지가 들끓는, 키가 작은 데다 목까지 짧고 때 국물이 질질 흐르는 스페인의 후예들이 흘깃흘깃 쳐다보는 눈길도 왠지 섬찟하고 기분 나쁘게만 느껴만 지다니 깜둥이들의 눈빛은 그래도 순박함이 담겨있다. 연민 같은 애정이 껌벅이는 하얀 눈동자 속에.
중심가 다운타운을 벗어난 외곽 지대도 아닌 한 블록 거리엔 홈리스 거지들의 천국이 펼쳐진다. 그들만의 집단을 이룬, 어떤 거지는 폐차 직전인 차에(그래도 벤츠), 또 어떤 거지는 리어카에 자신들의 일용품을 싣고 다니면서 떠돌이 걸식을 하는 유랑의 생활.
예천에서 왔다는 도경(度炅) 스님이 말한다. 그들이 바로 도안이라고, 과연 옳은 말인 듯싶다. 욕망의 덫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 안일의 생활에 길들여진 상류사회 사람들이 어찌 저들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랴.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경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도덕과 체면의 질긴 굴레의 끈에서 어떻게 저들처럼 위선의 겉치레 옷들을 훨훨 벗어던질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이 부처요, 저들이 도인입니다.’ 도경 스님의 그 한마디에 감명을 받는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