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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면 문체위와 영암문화원, 영암학회 등이 앞장서 '금정의병운동현창회(회장 김한종)'를 발족시켰다. 한말 금정의병 운동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부부 의병’이자 ‘여성 의병’인 양방매 열사를 기린다는 이유다.
앞서 금정면 문예체육진흥위원회는 지난 5월 초, 발족안을 결의하고 임원단 선정을 위임받았다. 이후 6윌 13일, 금정면사무소 회의실에서 김성재 의병장의 후손 김한종 전 노인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부회장으로는 ▲김오준 광주문협 이사 ▲송성수 금정면 문체위원장 ▲고화자 영암군의회 부의장을 선출했다. 사무국장으로는 이영국 대표, 감사는 김영택 금정면 이장단장을 선임했으며, 자문위원으로는 고승일 금정면장 등 문체위 위원들과 재경·재광향우회 임원 등을 위촉했다.
금정의병운동현창회는 양 열사의 의병활동과 본면 출신 48명 의병들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여 의향의 위상을 되찾고 면민들에게 자긍심을 앙양하며 후세들에게도 나라사랑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료개발 및 의병공원 조성과 후속사업들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금정의병의 시작은 1905년 을사늑약 후 면암 최익현과 노사 기정진의 영향으로 불길을 지폈고 1907년 '헤이그 사건' 후 정미칠조약의 체결로 고종이 퇴위하고 구식군대가 해산되면서 전국적으로 번져 임병찬, 고광순, 기우만, 기삼연 의병장들이 '호남창의 회맹소'를 설치 활동한 후 김준, 김율, 조경환 등이 계승 호남의병의 중심세력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했으며 기삼연, 김준, 김율이 전사하거나 체포되자 뒤를 이어 함평 출신 심남일 의병장이 국사봉에 '호남의소'를 두고 초기에는 선봉장에 강무경, 중군장 안찬재, 모사에 권택을 임명, 600여 명의 의병이 활발히 활동 호남 제1의 의병으로 기세를 떨쳐 왜군들이 경악했다.
특히 심남일 부대는 백성을 보호하고 군기가 엄격해 주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받았었다. 이에 놀란 왜군들은 '전라도 의병 대토벌작전'을 계획해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10일 까지 40일간 3기로 나눠 정규군 14연대 주축으로 보병 2260명 함정 10척을 동원해 해안선을 봉쇄 퇴로를 차단해 의병 420명이 전사했고 3400명이 생포되었다.
청남역도 길목의 지리적 영향으로 비교적 국내 정보를 접하기 쉬운 금정 출신의 의로운 유생들과 피 끓는 청년들은 앞을 다투어 의병에 참여하였다. 금정 출신 의병장급으로는 중군장으로 강찬중, 조치덕, 최재현, 김은식, 김선중 후군장에 김성재 보급장에 이희초 의병장 등 7명이 활동했으며 참여 의병으로는 ▲김득원(원정면) ▲김맹제(연소) ▲김원일(백운) ▲김재선(관송) ▲김종두(동령) ▲김태삼(금정) ▲나도환(농소) ▲나상집(농소) ▲나평집(농소) ▲류치선(관송) ▲민자화(토동) ▲민치도(토동) ▲민치선(토동) ▲민치호(토동) ▲민치황(토동) ▲박병국(아천) ▲박성률(아천) ▲박원중(아천) ▲박현숙(쌍효) ▲양권익(석동) ▲양방매(분토) ▲양병선(금정) ▲양성수(청룡) ▲양성일(분토) ▲양재환(금정) ▲유치선(금정) ▲이덕원(쌍효) ▲이상길(백운) ▲이종선(쌍효) ▲이종연(칠성동) ▲임규재(금정) ▲전사문(흥리) ▲정대선(석동) ▲정순재(금정) ▲정윤명(안정) ▲최모홍(쌍효) ▲최유홍(월암) ▲최한용(용천) ▲한안국(원정면) ▲홍경준(아천) ▲홍맹환(아천) 등 총 48명으로 당시 이 삼십대의 나이로 아까운 청춘을 나라에 바쳤다.
금정의병운동은 일제강점기와 보수정권의 집권으로 파묻혀 있다가 영암의 향토사학자 신희범씨의 양방매 열사 발굴과 금정이 고향인 향토 시인 김오준 광주문인협회 이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kbs 방송과 각종 언론매체에 수차례 재조명되어 그 실체가 알려져 면민들의 공감대 속에 기념사업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1908년 7월 강진 오치 전투, 금정 사촌 전투를 시작으로 1909년 7월 장흥 봉무동 전투까지 23차례의 전투를 통해 왜병과 헌병 보조원, 자위단원 등 수백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영암군에는 유일하게 일제가 중대병력을 배치하고 무차별적인 토벌작전을 벌린 곳으로 금정면 곳곳이 의병들의 전투장소였다.
국사봉 자락에 본진을 두고 군사훈련, 무기 제작이 자체적으로 이뤄졌고 해산령에 따라 1909년 7월 21일 금정면 고인동에서 피눈물 뿌리며 의병을 해산하기까지 금정면 일대는 곳곳마다 격전을 치뤘던 호남의병의 최대 본거지였다.
금정 출신 김오준 시인은 “여성 항일투사라고 하면 유관순만을 기억할 정도다. 그만큼 예전에는 여성의 위치가 낮고 사회참여가 제약받는 시절이어서 여성 항일투사들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미흡한 부분이 많아 우리에게 기억되는 여성투사가 적다”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인 양방매 열사의 의병활동은 여성독립투사들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나라사랑 정신 고취의 산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또한 몇년전 방영된 인기 드라마 '미스터션사인'의 여자 주인공의 모델이었던 양방매 열사는 “남편인 강무경 의병장과의 전장에서 꽃피운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어 창작을 위한 영감을 줄수있는 소재가 충분해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호남정맥의 한 줄기 덕룡산과 국사봉, 채일봉, 안산 등 의병들의 전적지가 많은데 그 장소도, 의병의 이름도 모른 채 세월의 갈수록 서서히 잊혀져 가고 그 고귀한 희생의 댓가는 고사하고 비문 한 점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뒤늦게나마 남송리 반계에 행정당국에서 양방매 열사의 생거지에 안내판을 설치했고 금정의병운동현창회를 구성 발족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