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한 멕시코에서의 회한

기고
피폐한 멕시코에서의 회한
자하 옹의 '자하삼방'
  • 입력 : 2022. 07.06(수) 16:09
  • 영암일보
자하 류용
멋대로 휘날리는 비닐, 종이 쓰레기들, 낡은 건물, 전재으이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황량함. 모든 것들이 생동감을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함. '빈민굴'에 와있는 착각이구나.

하물며 페트롤카(순찰차)마저 관광지 주차장 절벽 벼랑에 버려졌으니. 이곳엔 고철공장도 없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구나.

며칠째 여행하려던 계획이 실망 그 자체로 마음에 담고 또 그 험난한 국경선의 검문 검색을 또 치러야하는 기다림...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동감을 상실해 버린 거리에서, 농장에서, 몽매의 무지에서 과연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거리의 거지 떼들, 조금만 걸어도 매달리고, 상자에 조잡한 동물인형들을 들고 다니며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8,9세 아이들의 모습들.

50여 년 전 서울역 앞 껌팔이 소년 소녀들, 그리고 깡통을 들고 다니며 구걸을 하던 거지떼들, 남대문, 서울역, 염천교다리(1950년대) 밑을 지나는 잘사는 서구 사람들의 마음에도 지금의 이방인이 되어진 내 마음이었을까?

몇 차례 군사독재의 쿠데타로 이 나라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이 됐고 달러의 급등으로 멕시코 페소 인플레련상을 가져오고, 한 독재자의 권력과 치부에서 오는 불과 몇 %의 가진 자 외엔 밑 바닥의 가난이 대물림되는 나라 멕시코,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들에게도 비전이 있을까(축제의 삶과 춤으로 흥청거리던).

농촌을 등져버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멕시코시티. 그 넓은 땅 총 인구의 반이 모여들었다니. 정서와 감정이 피폐함 뒤에 또 그 무엇을 얻으려고.

그 찬란했던 태양신을 섬기던 마야문명은 어디로 가고 가난과 무지와 무기력만이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 축구라는 스포츠 열기에서나마 한줄기 시원한 소낙비를 기다리려는가?

이곳에 와서도 전통 멕시칸 음식을 체험하지 못한 채 (언어가 통하지 않기보다도 정대 친구의 아는 체하는 뽐냄의 거품 때문에 언어도 구사하지 못하지만) 다시 한번 실감나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여행가의 명언이 생각나는구나.

그토록 상대방의 의중의 정서를 읽지 못하는 아둔함으로 어떻게 사업을 꾸려왔을까? 의문스럽구나. 실망스럽구나. 향기가 전혀 없는 꽃이듯. 캐나다에 동행했었다면 주마간산 식으로 더 큰 실망을 했을텐데... '효천아빠' 앞에 자신이 민망할 정도였는데 다행이구나.

간헐동굴(수시로 수증기를 내뿜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이 압력이 밀려오는 파도를 밀어올려 수 십개의 물기둥을 만들 때 물보라 안개 되어져 반사되는 햇빛에 무지개를 만들어내는 자연의 신비.

이를 보기 위하여 국경을 넘어 그 몇 시간을 달렸던가. 풍요를 잃어버린 척박하고 피폐하고 메마른 사막을 지나며.

그리고 다시 국경도시. 정통 멕시칸 음식을 맛볼 요량으로 큰 간판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간판만 요란했지 실은 허름한 디스코텍의 음주코너였다. 나오려 했으나 종업원의 집요하고 간곡한 배려에 그냥 한끼(점심) 떼우기로 했다.

손님들도 서너 테이블 앉아들 있고,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발코니에 비치 파라솔을 설치했으니 지나는 사람들의 눈엔 거창하게 보였을 테지만...

주렁주렁 메달린 녹슬은 깡통들이며 풍선 파리똥이 덕지덕지 끼어 있는 칸막이(간이)들. 뗏국물이 찌든 '프론트'며 나름대로 이색적인 인테리어(아니면 설치)라고 애교있게 봐주려고해도 마음이 답답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음향기도 좋지 않아 찢어지는 탁음의 째즈와 락. 햇빛 강렬한 정오에 모두가 하모니를 망각한 제멋대로였으니.

디저트는 감자튀김 몇 조각에 마늘과 매운 고추를 다져 만든 소스. 매콤하고 상큼한 입맛에 역시 정열의 나라답게 양념도 얼큰하구나.

그리고 특별 서비스라는 데킬라 한 병. 레몬즙을 몇방울 떨어뜨리고 색깔도 우중충한(키위를 갈아놓은듯). 시큼털털한 맛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아 맥주를 청했다. 식사는 밀가루 반죽구이에 햄과 치즈와 야채를 곁들여 말아놓은 햄버거의 원조라고 하지만 이 역시 까다로운 내 입맛에는 아니었다.

생밀가루 냄새가 나는 역겨움이 더욱. 그러면서 내 자신의 까다로움을 스스로 자책해도 보면서, 이국에 와서 어찌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추려 하는가. 제나라의 특히 음식문화에선 더군다나 취향과 개성이 다른 것을. 편협된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한때는 해상의 세계 곳곳을 장악했던 대 스페인 후예들이 그 풍요로운 서부의 광활한 땅들을(그 당시엔 쓸모없는 전갈, 방울 뱀, 독거미, 지네들이 득실거렸으니) 미국에 내어주고 이렇듯 무지하고 가난한 밑바닥 국민으로 전락해 버리다니.

마야 태양신이 토템의 무신들이 그대들을 벌하였을까? 축제의 흥청거림 뒤엔 불행의 신이 또 질투가 나 슬며시 찾아드는 법이거늘..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