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아들

칼럼
약속의 아들
김종수 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 입력 : 2023. 01.19(목) 13:20
  • 영암일보
김종수목사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89세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예언을 하신다. 내년 봄 새싹이 날 무렵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예언을 ‘아멘’하고 받아들여야 신앙이 있는 사람인가?
사라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을 천막 문어귀에서 엿듣고 있었다. 사라에게도 이 말은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아마 하나님이 너무 오래 사시다 보니 노망이 들었나 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오.’(창 18:12) 하고 중얼거렸다.

한 마디로 기가 찬 사라의 비웃음일 것이다. 이 엉뚱한 하나님의 예언은 사라의 비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창세기 21장 1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예언은 들어맞았다. 그 아들의 이름은 이삭이었고, 이름 뜻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하나님이 웃으시리라.’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시고 인간의 비웃음을 비웃어 버리고 진정한 웃음을 안겨다주신 것이다.

혹자는 ‘자, 보아라. 성서에 하나님이 89세의 노할머니에게도 출산의 약속을 주시고, 그리고 기어이 아들을 낳게 해주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나타난 약속을 있는 그대로 믿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늙어 이미 오래 전부터 달거리가 끈겼고, 사라보다 열 살 많은 아브라함도 이미 아들을 갖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친아들 상속을 이미 접어 두었고, 자기 자신을 이을 사람으로 그의 종 엘리에젤을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관습과 법에 의하면 종에게도 주인이 월하면 상속원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친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아브라함도, 사라도 기가 막혀 웃을 정도로 이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듭 하나님은 친아들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친아들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여느 부모들처럼 남존여비, 딸보다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셨기에 주겠다는 것인가? 이 사건을 혈연적인 친아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한 우리는 이 사건의 깊은 메시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미 성서 고고하작들이나, 성서 사회학자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소위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의 계보를 연구하면서 이들이 혈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야훼 신앙을 고수하여온 부족장들의 이름임을 밝혀내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친아들’이라는 의미는 혈연적인 상속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야훼 신앙을 약속으로 받는 약속의 상속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족보는 혈연적, 지연적 족보가 아니라 약속의 족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지연과 혈연을 떠나라는 말이다. 지연과 혈연을 떠나라고 한 하나님이 그토록 친아들에게 집착하시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한 ‘친자식’이라는 말에는 혈연의 상속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으로 믿고 그 약속을 이어 받는 상속자, 즉 약속의 상속자라는 의미가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자. 친자식, 그 자체가 희망인가?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약속, 미래를 향한 약속이 없는 한 자식도 자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소망과 절망, 그 차이는 자식을 낳았느냐 못 낳았느냐가 아니라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이며, 그 기준은 약속의 신앙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인은 혈연적인 자식을 낳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약속을 잉태하는 사람이다.
고작 자녀와 성적으로 시비하고, 돈 몇 푼으로 미래를 규정하고, 사회적 지위와 가문의 배경으로 인생의 한계를 긋는 사람에게서 약속의 자녀는 출산되지 않는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틀림없이 너를 찾아오리라.

그 때 네 아내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죽은 듯한 겨울, 그 너머 봄의 새싹을 볼 수 있는 믿음을 나눌 수 있아면 그들은 약속의 부모요, 자식이다. 약속의 자녀는 혈연적인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주의를 벗어날 때 하나님의 뜻을 이어가는 약속의 자녀들을 본다.

이런 눈으로 사회를 볼 때 희망은 넘친다. 우리 사회 전체가 약속의 계보여야 한다.








[약력]
현 목포산돌교회 목사
현 전남 NCC 회장
현 목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