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전쟁에 대한 역사적 교훈, 우리의 나아갈 방향

기고
외교와 전쟁에 대한 역사적 교훈, 우리의 나아갈 방향
  • 입력 : 2023. 05.18(목) 11:19
  • 영암일보
이병록 소장
전쟁사를 통해 가장 불필요한 전쟁은 베트남전이다. 미국은 해방자로써 프랑스와 다르다고 개입했지만, 베트남 국민에게는 또 다른 프랑스였을 뿐이다. 도미노이론을 전략에 억지로 적용했지만, 베트남 철수 이후 소련이 14년 만에 해체되었다. 현재의 미국과 베트남 관계를 고려하면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독재자 제거로 인한 상황 악화는 전쟁 필요성을 반문하게 된다. 전쟁을 하지 않고 봉쇄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익이었다.

국익에 도움이 된 전쟁이 있다면 베트남전에서 한국은 참전 용사의 희생으로 10억 달러의 경제개발 종자돈을 벌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세계 패권을 넘겨받았다. 6·25전쟁에서 일본은 패전국에서 소련 봉쇄를 위한 미국 동맹국이 되었고, 전쟁에서 인명피해도 없이 경제부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여몽원정을 제외하고는 외부 침략을 받지 않은 축복받은 지정학 위치이다. 동맹과 적성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번영과 패망의 역사를 겪는다. 일본은 영국의 지정학적 위치처럼 유리하지만, 한국은 폴란드와 유사하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일본 대륙진출의 징검다리가 된다.

먼 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과 러시아의 전투에서도 한국은 손해를 보고 일본은 이익을 본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영국군 부대를 공격하자, 영국은 극동에서 러시아 공격을 위하여 거문도를 점령한다. 결국은 러시아 봉쇄를 위한 영일동맹으로 한국은 식민지가 되는 등 일본 지정학과 외교의 승리이다. 최근에도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며 각종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사할린 가스전 1,2호 사업 참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국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와 관계없이 외교를 통하여 참화를 피할 수도 있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압도하는 국제정세에 무지했고, 전쟁을 위해서 배후지를 안정시켜야 했던 신흥 강대국의 전략에는 더욱 무지했다. 광해군의 중립적인 실리 외교를 포기하고, 일부 지배계층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와 의리를 중시하는 명분과 이념적인 외교를 하다 병자호란을 겪는다.

구한말의 친 러시아 정책이나 아관파천은 영국을 포함한 해양 세력을 적대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황준헌의 ‘사의조선책략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연결함으로써(연미국) 자강을 도모한다.

’은 강화도 조약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와 변혁을 맞이하게 된 조선에게 조언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청나라는 몰락하고, 미·영이 일본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고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다. 신식군대와 구식군대 갈등, 동학혁명 진압으로 내부 역량을 소진한 점이 아쉽다.

해방과 건국 과정에서 김구 임시정부의 친 중국은 미국 견제를 받았고, 친미 반소 정책은 한국의 의지와 무관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지원한 동맹 국가 중에서 모범국이 되어 현재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반소 동맹국 중에서 일본이 모(母)기지로 이익을 보았다면, 한국은 전쟁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방파제 역할로써 비용을 지불하였다. 일본처럼 공짜 점심을 먹지 않았다.

과거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국력이었다면, 지금 우리의 국력은 다르다. 불리했던 지정학적 위치를 지경학적 이점으로 바꿀 수 있다. 통일 전 서독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은 동유럽 경제 진출 등 목적을 위하여 과감하게 동독 경제를 지원 1983년 6월 독일 기사당 총재 슈트라우스는 동유럽 시장진출을 위하여 동독에 10억 독일마르크(DM ; 미국 달러의 약 1/2가치)의 차관을 주선한다. 이 무렵은 유럽지역 내 중거리핵미사일 배치문제로 미소 양진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불과 몇 달 전 서독주민이 동독 국경근무요원에게 검문 받던 중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동서독 간 관계도 매우 악화된 시기로써 사망사건을 "살인행위라고 누구보다 앞장서 비판하던 슈트라우스였다.  하였고 통일에 이르렀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지만 북방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강경책을 추진하였지만, 747공약처럼 경제도 중시하였다. 현재는 통일부나 외교부의 국가전략보다는 국방부의 군사전략만 부각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관계처럼 정치적, 군사적 대치상태에서 교류와 협력은 이어지고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두자.


[약력]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