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성공하기 위한 조건 》

칼럼
《 『항상』 성공하기 위한 조건 》
김경호 변호사 ' 동양의 지혜, 우리 선조들의 지혜 '
  • 입력 : 2023. 07.17(월) 10:20
  • 영암일보
김경호 변호사
동양의 '지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마다 《어쩌다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항상 성공》하기를 꿈꿉니다. 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항상 성공》의 사주팔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 '항상'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동양 고전은 타인의 생(生)에 대한 존중과 함께 나의 생(生)을 함께하겠다는 마음, 즉 타인의 성공와 함께 나의 성공을 유지하겠다는 마음(中)과 타인의 아파하는 마음에 대한 민감함 감성(仁), 그리고 그 감성을 지켜나가는 자세(義) 등을 알려 줍니다.

서양적 가치인 과학과 자본주의 영향으로 《중용보다는 극대화》, 《타인 보다는 나》, 《정신문화 보다는 자본》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군에서도 '부하의 생(生)'을 중시하지 않는 군사법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마음에 이 글을 공유합니다.

군대가 존재하는 '목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금 군사법이 이 '목적'에 부합한가요?

실은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인생의 '성공'을 맛보면서 산다. 그래서 “왕년에 내가 말이지” 이 말이 맞다. 그때는 자신의 수준에서는 '성공' 했으니.

그런데 누구나 살면서 어쩌다 맞이한 성공을 '항상' 유지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성공을 '항상' 유지하는 그 '항상'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항상'의 대상은 무엇일까?

'천지의 대덕은 생(生)이다'라는 말씀이 있다(天地之大德曰生 「계사」下).
직역하면, '이 세상에서 생명의 탄생와 그 유지를 위한 인간의 활동이 가장 큰 덕이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먼저, '항상'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실은 '항상'은 항상 항(恒)과 항상 상(常)의 조합으로 각각 글자 하나 하나가 모두 '항상'의 의미로, 동양에서는 중용(中庸)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중용(中庸)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제때, 그 장소에 맞추어,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맞는 지혜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결국 '항상'의 의미는 '치우치지 않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항상'의 대상을 생각해 본다. 현재 잘 되고 있는 사업이 그 '항상'의 대상인가? 아니면 지금 잘 벌리고 있는 돈이 그 '항상'의 대상인가?

지금 자본주의의 천박함은 바로 '항상'의 대상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기 때문이고, 부자 3대가 못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항상'의 대상은 바로 '천지의 대덕'인 '이 세상에서 생명의 탄생와 그 유지를 위한 인간의 활동'이어야 한다. 즉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여기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행동해야 그 어쩌다 '성공'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를 돌아본다.

분명 군사법 변호사업계에 어쩌다 '성공'했다. 그 성공을 '항상'한다는 의미는 지휘관과 군법무관 및 군인들 간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를 놓지 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한 '항상'의 대상은 바로 '내 의뢰인의 군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특별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특별한 최선》으로 인해 기존 기득권인 군인들(지휘관과 군법무관 및 조사·수사기관 군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오직 진실이 중요하고,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천하를 살리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야전을 돌아본다.

야전에는 늘 어쩌다 진급에 '성공'한 지휘관들이 많다. 그 어쩌다 진급 성공을 '항상'한다는 의미는 계속 상부지향으로 안테나를 세우고 산다는 것이 아니라 상급 지휘관과 자신의 부하 간에 치우치지 않는 지혜'를 놓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한마디가 바로 《치우치지 않는》이다.

그리고 '항상'의 대상은 바로 '부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종합하면 어쩌다 진급에 '성공'을 '항상' 유지하기 위한 조건은 '치우치지 않는 지혜'로 '부하의의 생명'에 대하여 《특별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로 귀결된다.

『동의』 합니까?

그런데 야전을 보면, 군인권의 왜곡된 편파적 강조와 처벌기관의 군사법에 대한 특수한 철학과 경험 및 전문성 부재로 그 처벌로 인해 군인 간 갈등이 더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고, 이 상황에서 피해 군인의 생명만 중요하고, 가해자로 몰린 부하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는 듯이 조사나 수사하는 《치우친》 모습을 자주 본다.
이 《치우친》 조사나 수사의 모습은 바로 지휘관의 《치우친》 지휘의 모습이다.

이때 '항상'의 대상은 마땅히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든 '부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특별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대의 안정과 그 반사적인 상급 지휘관의 안위'가 그 대상인 듯 보인다.

그래서 야전에 현재 《생명에 대한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다. 특히 갈등이 생기면 《가해자에 대한 일방적인 배제의 꼴》이 처참하다.

왜 이렇게 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고는 있는가?

필자는 故 이예람 공군 중사 자살 사건 남편을 변호하면서 보았다. 이 사건은 군사법의 최고·최종 판단기관인 군법무관의 문제였다는 것을.
즉, 가해자를 수사해야 할 군검사의 수사 태만과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국선변호장교의 변호 태만 및 사건을 뒤에서 위법하게 실질적으로 지휘한 법무실장 등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의 결과임에도 피해자를 한층 더 보호해야한다는 명분으로 지금 야전에서《가해자에 대한 일방적인 배제의 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1차적으로 누구를 대상으로 개혁해야 할 문제였는가?

헌법 제27조 제4항 『무죄추정의 원칙』이 사라진 야전에 가해자만 일방적으로 배제하면 아직 아무 결정이나 편결이 나지도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모든 수모와 불명예는 당연히 인내해야 한다는 것인가?

지금 필자의 의뢰인 중에 극단적 선택을 3번 시도한 군인이 있다. 예전에 문제만 있으면 마구 보충대로 가라고 하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 겪는 수모와 불명예로 자살한 군인이 나오자 부랴 부랴 인사사는 보충대 개선 노력을 하려고 했다.
이번에도 필자의 의뢰인이 극단적 선택을 성공하고 언론에 나와야지만 이 육본 감찰은 감찰조사 문화개선 노력을 할 터인가?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이었습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