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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경에서 노자는 인간의 재치라든가 이기심 등, 작위성(억지로 꾸밈)을 멀리하고 무욕(無慾)에 처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한 물질적 재화에 대해서도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당부한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억지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며서 하는 행위는 오래가지 못하고 곧 그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키를 높아 보이기 위하여 발끝으로 꼿꼿이 선 사람은 오래 서있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두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하며, 스스로를 나타내려는 사람은 도리어 드러나지 못한다.”
노자에 의하면, 덕을 두터이 지니고 있는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아서 독 있는 벌레도 물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덤벼들지 않으며, 사나운 새도 채가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억지로 살려 하는 사람은 재앙에 맞닥뜨리게 마련이며, 마음이 기운을 부려 뭔가를 이루어보려 하는 사람은 억지스런 삶을 꾸려가기 십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모두 도에서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도는 어떠한 시간적·공간적 한계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극(無極)이며 무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무가 단순히 텅 비어있는 공무(空無)인 것은 아니고, 도리어 모든 존재를 생겨나게 하는 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자는 무의 효용성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수레바퀴에 있어서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의 통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수레를 사용할 수 있으며, 또 찰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되 그 빈곳이 있기 때문에 그릇을 쓸 수 있으며, 문과 창문을 뚫고 방을 만들되 그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유(有)가 이용되는 까닭은 무가 작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공허한 마음을 물질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바닷물로 목을 축이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우리더러 늘 마음(욕망)을 비우라고 충고한다. 굽은 나무가 제 수명을 누리고(쓸모가 없는 나무는 베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벌레는 몸을 굽혀 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두 발 나아가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겸손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 물은 파인 곳에 고이고(겸손한 마음에 진리가 깃들인다, 혹은 겸손한 자에게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뜻), 옷은 닳아져야 새것을 입으며, 욕심이 적어야 만족을 얻고, 아는 것이 많으면 도리어 미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끔 우리가 보듯이, 크게 이룬 것(大成)은 모자란 것 같으나 그 쓰임새에 그침이 없고, 크게 찬 것은 빈 것 같으나 그 쓰임에 다함이 없다.(큰 사람은 겉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크고 작은 일에 항상 유용하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큰 진리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고, 큰 사람은 좀 이상하게 보인다), 크게 교묘함은 서툰 것 같고, 크게 말 잘함은 말더듬이 같다. 이와 같이, 노자는 우리에게 무위자연(無爲自然)에 처하여 소박하고 유연하게 살아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