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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장자는 “나도 처음에는 놀라고 슬퍼서 소리 내어 울었다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소롭기 짝이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녀는 본래 삶도 없고, 형체도 없고, 그림자조차 없었지 않은가? 그러다가 어느 날 큰 혼돈 속에서 음양의 두 기(氣)가 발동하여 형체를 이룸으로써 그녀에게 비로소 삶이 주어졌네. 그리고 이제 삶에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갔거늘, 이것은 춘하추동의 변화와 똑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내 아내는 지금쯤 천지(天地)라고 하는 한 칸의 큰 거실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걸세. 그런데도 내가 만일 소리를 치고 통곡을 하며 운다면, 천지간에 얼마나 어두운 사람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장자는 기원전 4세기 후반 중국의 전국(戰國)시대에 살았던 철학자이자 산문가이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도에서 생겨나고 다시 도에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진정 도를 깨닫는 사람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성공을 과시하거나 실패를 탓하지 않으며, 억지로 일을 꾸미지도 않는다. 또한 그는 ‘이 세상에서 한 쪽의 완성은 다른 쪽의 파멸을 뜻하므로 전체적 질서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는「만물일체론(萬物一體論)」을 주장하였다.
「만물일체론」에 대한 입장은 그 자신의 임종 장면에서도 변함이 없다. 장자가 죽어갈 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안장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자는 “염려하지 마라. 나는 천지를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벗으로 삼으며, 별들을 보석으로 삼고, 만물을 휴대품으로 삼으니 모든 장구는 갖추어진 셈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좋게 하겠느냐?”고 하였다. 이에 제자들이 “선생님! 관이 없으면 까마귀나 독수리 떼들이 뜯을까봐 걱정이 됩니다.”라고 하자 장자는 다시 말하기를 “노천(露天-한 데)에 버리는 것은 까마귀나 독수리 떼에게 뜯어먹도록 주는 것이며, 땅에다 묻는 것은 개미떼나 땅강아지가 먹도록 주는 것이니 이 둘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것은 마치 이쪽에서 식량을 빼앗아 저쪽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하였다.
장자의 형이상학은 무(無)를 우주만물의 본체로 보는 도(道) 일원론이다. 본체로서의 무, 즉 도는 우주 안의 어떤 사물에든지 존재한다. 우리 눈앞에 펼쳐져있는 삼라만상은 모두가 도의 나타남이다. 만물은 도에서 생겨나고, 다시 도에로 돌아간다. 도는 절대무차별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도는 모든 것을 보내고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이룩한다. 그러므로 진정 도를 깨닫는 사람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것을 탓하거나 성공을 과시하지도 않고, 억지로 일을 꾸미지도 않는다.
삶과 죽음은 그 모양만 다를 뿐, 본질에 있어서는 똑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기가 일쑤이다. 삶과 죽음은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는 무(無,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머리로 삼고, 삶을 등골뼈로 알며, 죽음을 꽁무니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장자는 생사(生死)와 시비(是非-옳고 그름), 권세와 부귀 등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한, 달관적 인생관의 소유자였다. 그는 유가사상 대신 노자의 입장을 택하였으며, 모든 분별지(分別智)를 타파하였다. 그리하여 자유분방함으로써 천지와 일체가 되는 원리를 설파하였던 것이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