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천 댁

기고
아 천 댁
군서 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3. 12.29(금) 14:36
  • 박석구 문인
5월 중순이 오면 우리 동네 봄날 아침은 늘 트랙터 소리로 요란하다. 이제 논에 모를 심어야 할 시기가 돌아와 논흙을 갈아엎고 반반하게 써레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쟁기나 경운기를 이용하여 했던 논일이 그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능률이 빠른 트랙터로 대체된 지는 꽤 오랜 일이다.
더구나 동네 남자들은 몇십 년 전만 해도 일과 술에 절어 환갑이 되기 전에 거의 이 세상을 떠나갔기에, 봄이 오기 전 마을회관에 가서 보면 주름이 가득한 여인들만 10원짜리 삼봉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아천댁은 날이 밝자 여느 때처럼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을을 휘돌아 30여 호 되는 집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농수로 옆 자신의 텃밭으로 향했다.
300평 남짓한 밭 한쪽에는 작년에 심어놓은 마늘과 양파가 잎들을 햇볕에 그을리며 거의 익어가는 중이고, 그 옆 감자는 하얀 꽃을 피웠다.

“꽃을 따야 하는데.”

그녀는 혼잣말을 뇌까리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비닐터널을 씌운 고추밭을 바라보았다. 600여 포기 고추들은 이제 동그랗게 뚫어놓은 비닐천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내일은 역병약을 해야겠다.’

그녀는 구부러진 허리를 펴며 오른손으로 등을 두드렸다.
그 옆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비닐로 멀칭을 한 구멍 사이로 참께 순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것들은 나중에 어차피 한 개만 남고 뽑힐 것이다. 또 그 옆은 고구마를 심을 두둑이 길게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며칠을 거쳐 삽으로 고랑을 파고 그 흙들을 쳐올려 이랑을 만들었다. 그녀의 집 오른편 구석에는 두엄을 깔고 심어놓은 고구마에서 자색 순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늘과 양파를 깨내면 그 자리에 겨울에 수확할 감자를 심을 것이고 하지감자를 캐낸 곳은 콩을, 참깨를 수확하면 그곳에 다시 마늘과 양파를, 고추를 한 자리에는 배추와 무를 심을 것이었다.
지금 밭둑에는 단호박과 방석호박이 막 줄기를 뻗치며 마늘과 양파가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똑같은 방식으로 십수 년째 이 밭을 갈고 있다.
하긴 그녀가 짓고 있는 농사일은 이 마을 모든 여인네들도 다 똑같아 어느 밭을 보나 그 작물들로 가득했다.
어차피 작수골 밑에 있는 다섯 마지기 논은 농협에 위탁을 맡겨버린 상태라 곁을 지나가는 농수로 물만 채워주고 논둑에 제초제를 뿌려주면 될 것이다.
작년 가을에 99세로 돌아가신 감산할머니 생신날은 하필 한여름이었다.
췌장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요양차 고향으로 내려온 막내딸 순심이가 마을회관에서 생신을 축하하는 점심상을 차리고 마을사람들을 초청했다.
기력이 쇠한 감산할머니를 구석에 앉히고 마을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이 휘휘 도는 와중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모처럼만에 차려진 음식을 열심히 탐했다.
거기다 소주 몇 잔이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쏟아졌다.

“와따, 올해 엄마나 가물었는지 풀들도 안 나대.”
“나는 콩 심은 자리에 콩은 안 나고 쇠비름만 환장하던디?”
“달구새끼들이 고추 쬐깐 딸라고 왼종일 밭에 있었더니 겁나 더왔는가 두 마리나 죽어부렀당께.”

그때였다. 술만 거푸 마시고 있던 아천댁이 소리를 꽥 질렀다.

“염뱅들 하네. 그것이 뭔 벨 일이라고. 내 꼬치밭은 탄저가 와 갖고 다 죽게 생겼구만.”

그러더니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감산할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악다구니를 써댔다.

“저 할망구 땜시여. 내가 하필 여그를 지나가고 있는디 바로 내 앞에서 엎어져 가꼬 병원에 데꼬 가니라고 약을 못했당께. 영감 산만큼 더 살았으먼 빨리 죽어야지 멀라고 옆에 사람 성가시게 항가 몰러.”

갑자기 온 방이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들의 눈꼬리가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그때야 상황을 의식했는지 혼잣말처럼 목소리를 죽였다.

“하긴 내도 그라제. 남편이라고 생겨먹은 썩을 놈의 새끼가 새끼들을 아홉 명이나 퍼질러놓고 술 퍼먹다 디지고 나서 나도 그 곱절이나 살고 있응께.”

다음날부터 감산할머니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며칠 후 감산할머니는 삼베저고리에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달개비꽃 색깔 치마를 입고 요양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두 달 후, 결국 100세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천댁은 그 다음날,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칠게처럼 모로 걷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더니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광암댁과 영곡댁처럼 유모차를 사서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도 악착같은 면이 있어서 고구마순을 따서 유모차에 싣고 장에 가 팔려다
마을 어귀 논둑길에 엎어져 노랗게 익어가는 벼를 한 움큼 붙잡고 거기다 코를 박고 말았다. 하필 뾰쪽한 돌이 하나 있어 얼굴 반을 긁힌 덕분에 며칠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아천댁은 지금 집에 없다. 며칠 전 그녀도 감산할머니처럼 읍내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목포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큰아들이 보내고 말았다. 다리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 겨우 마루에 엉금엉금 기어 나와 막 강아지티를 벗은 백구나 바라보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집을 지나치다가, 가끔 들른 큰아들이 백구에게 밥을 주고 있으면 나는 그녀의 근황을 묻곤 한다. 어떠냐고 물으면 맨날 밭 걱정밖에 안 해요 하고 웃으면서 얘기한다. 벌써 이 동네여인들이 세 명이나 요양병원에 계신다.
올해는 영곡댁이 위험하다. 물리치료를 해도 허리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고 한다.
박석구 문인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