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는 어떤 쾌락을 추구했을까?

칼럼
에피쿠로스는 어떤 쾌락을 추구했을까?
  • 입력 : 2024. 01.25(목) 15:03
  • 영암일보
강성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세기 무렵 그리스의 사모아 섬에서 태어나 열네 살 때부터 철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후 아테네에서 교수 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이 에피쿠로스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먹고 마셨다고 말한다. 너무 많이 먹은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은 것을 토해내야 했으며, 밤마다 벌어지는 잔치에 자신의 정신력까지 모두 탕진해버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랑의 향락에 빠졌다는 비난도 함께 받았는데, 창녀와의 잦은 편지 교환과 부인들을 은근히 유혹하는 것 같은 편지들이 들먹거려진다.

특히 에피쿠로스가 그 여자들 가운데 하나와 그녀의 집에서 동거했다는 사실은 당시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가 그 모든 못된 짓을 하느라고 학문 연구에 등한히 하였다고 말하며 그를 여지없이 깎아내렸다. 그리하여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을 ‘돼지들’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러나 제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은 전혀 다른 평가를 하고 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어쩌다가 가끔 딱 한 잔의 포도주만을 마셨을 뿐 대개는 물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였으며, 아주 어려운 시절에는 거친 콩 요리로 목숨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또 에피쿠로스는 “사랑의 향락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해(害)가 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라고 하여 관능적인 사랑을 삼갔다고 한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까? 우선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행복한 삶을 이루는 알파요 오메가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쾌락주의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강하고 순간적인 쾌락 대신에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서 오는 약하고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했던 것 같다. 비록 약하지만 인생 전체를 통틀어 지속될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평소 그의 지론이기도 했다.

에피쿠로스는 인품이 온후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알아듣기 쉬운 교수 방법으로 인하여 부녀자들까지도 문하에 모여 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제자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절도나 고요함을 지키고자 하였고, 분주한 시민 생활보다는 친구들과의 작은 모임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철학함을 추구하였다. 에피쿠로스는 ‘고상한 쾌락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조지 산타야나(20세기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는 에피쿠로스를 ‘극단적 금욕주의자’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욕구에 부응하고 어떤 욕구를 버려야 하는가? 먼저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음식을 먹어야 하고,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음식이나 주거 공간은 필수적이다. 이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커다란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성적(性的) 욕구나 식도락(食道樂)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럽기는 하되, 그것이 채워지지 않는다 하여 커다란 고통이 따르지는 않는다. 부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힘쓰지 않아도 채워지는 것까지 마다할 것까진 없지만, 그것을 붙잡으려고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추구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를 채우고자 하면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희생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평정심까지 해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필수적 욕구가 아닌 것들(성욕, 식도락, 술, 담배, 도박, 마약, 부, 명예, 권력 등에 대한 욕구)을 되도록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다만 최소한의 필연적인 욕구(음식, 주거 공간)를 채우는 데 힘쓰는 일은 크게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