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언정”- 스피노자는 과연 낙관론자였는가?

칼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언정”- 스피노자는 과연 낙관론자였는가?
  • 입력 : 2024. 02.02(금) 13:28
  • 영암일보
강성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언정,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유럽인들은 마르틴 루터가 한 말로 알고 있다. 하지만 둘 다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만약 이 말을 스피노자가 했다고 가정한다면, 그가 대단한 낙관주의자라고 추론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의 생애를 반추해보았을 때,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스피노자(1632년-1677년)의 아버지는 세 번 결혼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는데, 스피노자는 그 가운데 둘째였다. 아버지의 두 번째 부인이자 그의 생모인 한나 데보라는 아들이 여섯 살 때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스무 살 때 라틴어 학교에 입학한 스피노자는 스승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얼마 후 다른 구혼자가 값비싼 선물을 보내주자 그녀는 스피노자에게서 돌아서고 말았다. 이후 그는 한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스물네 살 때에는 이단적인 사상이 문제되어 교회에서 심문을 받았다. 온갖 압력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사람들은 밀정을 시켜 그를 염탐하기도 하고 뇌물로 매수하려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자 드디어 그를 암살할 계획까지 세우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유태인 교회로부터 온갖 저주와 함께 추방령(파문)을 선고받는다.
누이동생이 상속권을 가로채려 하자 스피노자는 법정투쟁을 벌여 재산을 되찾은 다음, 침대만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누이동생에게 돌려주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피하였고, 어디를 가건 셋방조차 빌려주지 않았다.

이에 이름을 ‘베네딕트’로 바꾸고, 지붕 밑 다락방에서 살게 되었다. 스피노자는 3개월 동안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떳떳한 직장을 구할 수 없었기에 안경렌즈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그의 저서들은 출판되자마자 금지도서 목록에 추가되어 판매가 금지되었다.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해야 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돕겠다고 하였지만, 스피노자는 생활에 꼭 필요한 정도만 받을 뿐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안경렌즈 손질의 직업은 그에게 폐병을 안겨주었고, 외롭고 고독한 삶은 45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마감되었다.
그렇다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언정,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의 본뜻은 무엇일까? 첫 번째 해석은 범신론(汎神論)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스피노자에게 신은 곧 자연(세계)이고, 이 세계(지구)가 곧 신이다.

따라서 지구의 멸망은 곧 신의 멸망이 되는데, 이러한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 두 번째 해석은 그가 ‘모든 것은 신에게서 비롯되는 인과 필연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보았던 데서 유래한다. 인간의 행동 역시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닌, 불변의 철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세계에 종말이 온다는 것이 필연적 사실이라면, 그러한 운명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즐겨라!”라는 말에 스피노자가 충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해석은 여기의 사과를 선악과(善惡果)로 보았다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로 인하여 인류는 불행한 운명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선악과 사건이 없었다면, 인간존재는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서만 살아가는’ 비참한 존재일 수밖에 없게 된다.

자유 의지가 박탈된 그는 어떤 사물이나 동물의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선악과(사과)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존재감, 자유로운 존재임을 상징한다.
따라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언정,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에라도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의 정체성, 그것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