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여 울

기고
개 여 울
군서 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4. 02.08(목) 11:24
  • 영암일보
마을 서편으로 마을을 돌아가는 개천이 있다.
내 유년의 개천은 해맑고 투명한 개울물들이 작은 돌들 위나 작은 모래톱을 스치며 졸졸 흘러가는 모습으로 남아있으나, 지금은 물길을 돌리고 높은 축대를 쌓아, 내려가 손을 담그기가 어려운, 그저 스러진 억새들을 바라보며 걷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하여 내 산책길은 편백이 가득하고 계곡물이 드러난 바위틈을 돌아 흐르는 뒷산 계곡으로 방향을 잡은 지 꽤 된 것 같다.
그것도 늘 혼자서.

재작년인가 한때, 읍내에서 조그만 음식점과 술집을 겸한, 아직도 귀여움이 가득하고 통통한 몸집을 가진, 50대 후반의 여인네가 우리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서울 변두리에서 남편과 함께 건축자재 판매점을 운영하다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이혼하고 이곳으로 내려온 지 십수 년이 되었다고, 처음 점심을 먹으러 간 나에게 내어온 심심한 반찬처럼 이야기하였다.
집이 어디냐고 묻기에 가르쳐 주었더니 며칠 뒤 느닷없이 찾아와 고목이 된 동백나무를 처음 보았다며 감탄하면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수시로 동백나무가 보고 싶다며 집을 찾았는데 그녀를 데리고 가끔 뒷산을 산책하였다.
내가 여기 내려온 지 어느덧 여섯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 봄 여름 가을은 다섯 번이 지나갔다.
올겨울은 작년과 달리 몹시 추운 날도 제법 있었고 눈도 꽤 내렸다.
따스해진 날은 뒷산에 들어가 떨어진 낙엽 더미에 앉아 하늘을 보거나 깊은숨을 들이마시면서 코로나19 때문에 더욱 혼자된 몸뚱이를 추슬렀다.

돌아오는 길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나 사스레피나무가 군데군데 모여 있는 개울을 건너야 했다.
조심스레 돌들을 밟고 건너자마자 널찍하고 반반한 바위가 개울을 바라보며 나를 반겼다.
내가 거기에 앉아 맞은편을 바라보면 소나무가 긴 세월 동안 흐르는 물에 패인 뿌리를 드러내고 그 물을 보듬고 있었다. 개울물은 소나무 뿌리를 한 바퀴 돌아 나와 아래의 여울로 떨어지며 재잘거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겨우내 집을 고치고 난 4월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여기에 앉아 며칠째 깎지 않은 수염을 두 손으로 감싸며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날은 따스해지고 2000평이나 되는 울안 밭에 풀들은 하염없이 돋아 자라는데, 농사일은 하나도 아는 게 없어 그곳에 무엇을 심을지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지니고 내려온 몇 푼의 돈은 집수리 비용으로 이미 바닥이 나 버렸고. 어떻게 지내지?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막막함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그 해 나는 다시 먼 곳으로 일을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고, 조상이 물려준 땅 몇 뙈기를 팔아 농부가 되기 위해 비닐하우스며 저온 창고 등을 지었다.
그리고 120그루의 몇 가지 과수를 심었다. 그해 가을, 나는 그 개울가 바위에 앉아 ‘살아보자, 살 수 있어’하고 다짐을 하였다.

그다음 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깊은 봄이었다.
그해는 비록 적자에 짓눌린 삶이었지만 무언가 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정착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겼다.
방과 후 강사도 시작하였고 밭에서는 지난해 심은 마늘과 양파, 그해 심었던 고추와 감자, 땅콩 등이 푸르게 푸르게 자라고 있었다. 책도 한 권 펴냈다.
나는 개울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각시붓꽃의 처연함. 도드라지는 산딸기의 팽팽한 푸르름. 쑥 무더기 사이 흰제비꽃의 애틋함. 갈빛 돌을 닦으며 흐르는 물. 거기에 비치는 구름 하나.
그 구름을 헤집는 갈겨니 떼. 다시 오면 이들은 사라지거나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흐르는 것들은 자기만의 소리로 흐르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도 흘러가듯 흔들리고 있었다.

지난 늦은 가을에 여기를 찾았을 때, 나는 혼자였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여전히 혼자였으나 지난해는 바빴다.
비록 과수들은 냉해를 입어 열매를 얻지 못하였으나 마늘과 양파 수확은 예상을 뛰어넘게 좋았다.
감자는 하나씩 캘 때마다 통통함과 토실함에 도와주러 온 동네 아주머니 입에서 “이제 자네는 요놈의 감자 같은 마누라만 하나 구하면 되겠네.” 하는 탄성이 나왔다.
고추는 다른 집에 비해서 병도 덜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많이 땄다. 서리태는 가로등 주위만 제외하고 꽤 많은 양을 수확했다.

여전히 방과 후 강사도 계속하고 있었고 사랑방 터에다 예쁘고 아담한 이층집을 지어 민박도 하기 시작했다.
‘총인구 조사’ ‘농어림 가구’ 조사원으로 아르바이트도 겸했다.
다만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하고 세월이 갔다는 조바심이 늘 뒤따랐다.
그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나를 위해 열무김치를 담아준다며 마늘을 까고 있는 그녀에게 “먹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사랑도 해야지. 안 그래?” 했더니 몇 달간 연락이 없었다.

“동백나무 보고 싶어,”

며칠 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소월의 시가 떠올랐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