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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 박석구 문인의 이야기 - 귀향 6년
  • 입력 : 2024. 03.07(목) 11:15
  • 영암일보
박석구 군서문인
이 봄이면 당신이 생각지도 못하고 보내는 밤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내가 유년 시절 바라보았을 때보다 어둡고 성긴 별들을 보면서 가볍게 스치는 바람을 입술로 느끼며 서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산등성이 아래는 지친 듯 어둡고 그 경계의 하늘은 파랗습니다. 동쪽 하늘의 북두칠성은 국자를 뒤집어, 아래 작게 깜박이는 작은 별에게 옛이야기 하나를 쏟아내고, 서쪽 하늘의 오리온좌는 다시 방패연의 모습으로 흐르며 자목련과 모과꽃들을 밝히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빈 들들은 이제 봄까치꽃이나 광대나물, 별꽃 들이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열무와 상추를 심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즐겨 했던 것들, 취미나 음식, 산과 바다나 강 같은 여행지, 글이나 작가, 좋아했던 사람이나 영화, 만나고 스쳐 간 여인들의 성향 등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은 그 취향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는 데 깜짝 놀라곤 합니다.

가령, 젊음의 시절엔 탁구나 당구, 테니스를 일주일 내내 번갈아 가면서 즐기고 했는데 지금은 몇 년 동안 이것들을 해 본 기억이 없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생선을 좋아했던 시절이 어느 땐가 가물거릴 정도로 지금은 젓갈이나 간장에 절인 음식들이 식탁 위를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거야 홀로 TV를 보며 깨작거리는 끼니가 너무 오래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TV도 예전에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눈길을 주었으나 지금은 단막극이나 뉴스가 켜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많은 산행도 이제는 몇 년간 겨우 뒷산을 걸으며 나무나 풀들이 자라는 모습이나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고작이고, 젊었을 적 환호를 지르며 해수욕장 바닷물에 뛰어들던 시절이 아득한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그 끝머리 바위에 앉아 붕장어 낚시나 하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즐겼던 일들이 나이를 따라 싫어지거나 잃어가고 있지만, 이곳에 자리 잡고 지내오는 동안 그와 반대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땅을 통해서 자라는 나무와 풀, 작물의 생애입니다. 인간은 지구상에 사람이 다른 종족보다 많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봄이 오면 수십 종의 풀들이 수만의 개체로 우리 집을 덮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에 자라나는 풀들이야 인간의 개체만큼이야 덜 하겠지만 30가구가 조금 넘는 우리 동네를 덮는 풀들을 바라보면 한 우주가 펼쳐져 있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풀들과 나는 이제 서로를 바라보며 한해 내내 긴 여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물고 있는 붉은 해를 마루에 앉아 바라보며, 올해는 그다지 가물지 않겠구나 하며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데 앞집에 살며 나와 초등학교 동창인 이장이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자네, 연산댁 알지.”
“우리 동창 연임이 어머니?”
“응, 엊그제 동네를 찾아왔어. 자기 죽으면 우리 동네 초수동에 묻어 달래.”

내 어릴 적 연산댁과 연산양반은 하도 가난해서 우리 동네 궂은일은 도맡아 하며 먹고 살았던, 지을 밭 하나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연임이는 도시락이 없어서 사기 밥그릇에 보리쌀로 지은 점심을 싸 가지고 오곤 했는데, 책보자기를 풀다가 그게 교실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바람에 주저앉아 울고 있던 기억도 납니다.
내 저린 바지를 앞 냇가에서 빨아주었던 연임이.

“연임이는 잘 산대?”
“죽었어. 그것도 마흔 정도에서. 간암으로.”

정말 무너진 그녀의 집터를 지나면 그리웠던 게 연임이었습니다. 그 시절, 나를 어머니처럼 챙겨주곤 했는데. 벌써 죽다니.
정처란 이런가 봅니다.
그 가난한 시절에 살았던 동네에 떠났으면서도 다시 오고 싶은. 그래도 좋았던 곳.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