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전축

기고
야외전축
군서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4. 03.14(목) 10:41
  • 영암일보
<사진=박석구 문인>
7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쳤던 우리는 불그죽죽한 플라스틱 덮개로 만들어진 포터블 전축을 기억한다.

이른바 야외전축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갖고 있던 자者는 단연 그 주변 아이들의 총아가 되었고 해적판 LP 레코드를 걸어놓고 고고(GOGO)라는, 지금 애들에겐 뭉그적뭉그적하는 게 한심하게 보이겠지만, 다가섰다 물러섰다 하는 춤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 고고음악의 불멸의 명곡들을 보면,

톰 존스(Tom jones)의
(좆나게 달려라),

씨씨알(C.C.R)의
(워매 잘난 우리 순이),

다니엘 본(Daniel Boone)의 (와따 존거 일요일)

등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소풍이라는 초등학교 때의 즐거운 단어는 행군이라는 군대 언어로 대체되고, 갈색 개구리 모양의 교련복을 입고, 보무도 당당하게 열 맞춰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이란 군가를 악을 쓰듯 부르며 도착한 소나무 그늘이 있는 큰 뫼똥 옆에서, 터진 김밥에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고는 이 야외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고고음악에 맞춰 건들건들 흐느적거리며, 다이아몬드니 개다리 춤이니 하면서 얼굴을 맞대던 그 광경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제 야외전축은 카세트레코더나 CD 플레이어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게 없었다면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cl)의
(아직도 왜 달팽이보다 뱀이 되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디 에니멀스(The Animals)의

(좀 그렇고 그런 집안이란 생각이 나는),

디 퍼플(De Purple)의
(조용히 안 할래? 그러면서 노래는 무척 시끄럽다.)

등의 가슴 벅찬 명곡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이 기막힌 전축이 없었다면 우리가 날마다 달콤한 아침잠을 건방지게 깨워 제끼는 ‘새마을 노래’를 어떻게 그저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위대한 지도자이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등불 비슷한 박정희 어쩌고저쩌고’ 하는 지겨운 제국주의적 깝깝하고 광기어린 땡 뉴스를 시간마다 듣고 살 수 있었겠으며,
강열한 햇빛 속에서 나무로 만든 목총을 짊어지고 그 딱딱하고 재미없는 제식훈련을 견디어 낼 수 있었겠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 당시 가정에는 성실하고 아내에게 다감하고 자식에게는 자상하고 엄격한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예비군 훈련 소집을 받고 개구리복만 입으면, 누구나 말 안 듣고 나태하고 잡담이나 하는 문제아들로 변해버리는 것을 통탄하는 정치인이나 장관들이 어찌 한둘이었던가?
이 자者 들이야말로 예비군 훈련을 받아보지 않았던 병역기피자들이 아니었던가?

예비군이었던 우리들은 아무런 의무도 없고 도움도 없으며 생기는 것 하나도 없으면서 금쪽같은 남의 시간만을 축내는, 그야말로 생기는 것 하나 없이 시간만 죽이는 소집훈련은 정말 싫었던 것 아니었던가?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내가 그 하루 6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싫어서 정관수술을 해버리고 일주일을 어기적거리며 살았겠는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