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에 들다

기고
산골짜기에 들다
군서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4. 04.04(목) 11:28
  • 영암일보
박석구 군서문인
눈이 그친 늦은 오후, 베어낸 감나무를 모아 장작을 패다가 모처럼 저기 보이는 월출산이 선명하고 가깝게 보여 장작 패는 일을 제쳐두고 산으로 향했다. 산길에 들어서자 이미 씨를 반쯤 날린 마른 억새들이 골짜기 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가리키는 작은 골짜기로 발을 옮겼다. 소나무나 사스레피, 동백 이외의 활엽수들은 잎 떨군 줄기와 가지를 한껏 벌리고 하늘의 푸른빛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밑 여윈 풀들은 바위 틈 사이에서 겨우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 쪽으로 몸을 눕히고 있는 듯 보였다. 일순 물소리가 내 귀에서 멀어지는 생각이 들자 모든 주위가 고요해지고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적막을 품고 있는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서어나무들이 각자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수리나무는 아직 몇 개의 마른 갈색 잎들을 채 버리지 못했고 오리나무는 검은 방울을, 오동나무는 노란 열매를 가득 달고 이미 떨어져 바닥에 널브러진 자식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서어나무는 매끈한 제 몸을 어루만져주라는 듯이 소나무에 기대고 있었다. 그때 산등성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갑자기 적막이 사라지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각자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맞춰 몸들을 숙였다가 일어서는 모습이 마을을 향해 흘러가듯 보였다. 갈빛 돌을 닦으며 흐르는 웅덩이의 물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바위틈을 빠져나온 상수리잎도 바람에 밀려 다시 다른 바위 뒤로 숨어버렸다. 바람이 그치자 웅덩이는 구름 하나를 품고 있었다. 다시 오면 이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며칠 후면 산딸기나 청미래 덩굴들은 가지 끝부터 새순을 틔우고 마른 풀들을 보듬는 모습으로 연한 새 촉을 내밀 것이다. 흰 제비꽃도 가녀린 몸을 곧추세울 것이고. 나는 오엽송 우거진 초수동樵水洞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는 나의 7대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으로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 글을 쓴다고 움막을 짓고 1년인가 생활을 한 곳이다. 아버지는 산속의 생활이 지겨워 다시 마을로 내려오기 전까지 글을 한 편도 쓰지 못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초수동은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골짜기가 처음 발원한 곳에서 용출수가 항상 솟아나기 때문이다. 하여 계곡은 가재나 갈겨니, 피라미들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예전엔 여름밤이면 동네 처녀들이 미역을 감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돌아 밑으로 내려가면 널찍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범바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돌로 바위를 두드리면 통통 속이 비어있는 소리가 났다. 스무 살 언저리에 저기 내려다보이는 호동虎洞이란 마을의 여자동창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가끔 이 바위에 올라서서 그녀의 이름을 외쳤던 기억이 있다. 내려오는 길 초입에 커다란 소나무가 지금도 서 있다. 그 소나무는 내 어릴 적보다 훨씬 더 크고 우람해져 있다.

거기서 몇 발자국 가면 뇌염을 앓다가 죽은 정희의 돌무덤이 있었다. 내 동창 정희는 6학년 여름방학을 끝내 보내지 못하고 이곳에 묻혔다.
언제나 말이 없고 조용히 웃기만 하는 예쁜 애였는데, 돌무덤은 찾아보니 흔적도 없다. 해가 설핏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에 남겨둔 예전 기억을 돌아보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아, 모든 것들이 내가 이곳을 떠나서 돌아올 때까지 내 기억에서 너무 멀어져 있었구나. 50년의 세월을 에돌아 귀향했으나 삶은 저 해처럼 기울어져 있고 결국 혼자인 삶으로 귀착되고 말았으니.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는 어릴 때처럼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가니 지금의 삶이 얼마나 좋은가. 외롭다는 것은 아직도 내 가슴에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 외롭다는 것은 아직도 내 가슴에 사랑할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