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

기고
나 어떡해
군서문인의 이야기
  • 입력 : 2024. 04.18(목) 11:44
  • 영암일보
<사진=박석구 문인>
삶은 감자는 먹지 않고 두면 며칠 가지 못하고 썩어버리지만 말라비틀어지더라도 감자를 실온에 그냥 두면 잘 썩지 않죠.
어떻게든 번식을 하려고 기다리는 중이니까.
당신이 검은 비닐을 씌운 감자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다고 치자.
그러면 어느 봄날 비닐 사이로 삐어져 솟아난 순을 보며 그 생명력에 감탄할 때가 있을 것이다.
종족을 번식하는 명목을 인간은 사랑이라는 말로 대신하지만 이제 나도 그런 감정이 점점 소멸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아직도 약간의 감정은 남아있어서 감자처럼 복스러운 여성을 보면 슬며시 쳐다보게 된다는 것.

나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밭에 배추와 무를 심지 않는다.
혼자 사는 내가 하루에 김치를 먹는 양이 젓가락으로 몇 번 되지 않을 정도이고, 또한 혼자 산다고 김장철이 되면 동네 분들이 조금씩 가지고 온 김치가 스무 포기도 넘어서 6개월은 넉넉히 김치만 먹고 지낼 양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터에 김치를 파는 여인네가 친구여서 열무나 쪽파 등을 텃밭에 심어 갖다주면 김치를 주기도 한다.
광암아짐이 김장을 했다고 김치 몇 포기를 가지고 와 나를 부른다.
아짐은 내가 살던 집터에 다시 집을 지어 살고 계시는 일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치를 내 손에 쥐여주고는 마루에 앉더니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슨 일 있어요?”
“혼자 지내기 불편하지 않아?”
“어쩔 수 없죠.”
웃음만 짓고 있는 내 옆으로 몸을 바짝 붙이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간곡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셋째 딸이 내 막내동생과 나이가 같다는 것.
결혼을 두 번이나 했는데 아이도 없고 남편이 다 일찍 죽어버렸다는 것. 그리고 계속 혼자 잡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이제 돈 한 푼 없다는 것.

“그년이 어렸을 때부터 남 주기 좋아하더니 평생 내 속을 썩여.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데 몇 년 있으면 환갑이여.”

그리고 속삭이듯 말한다.

“자네가 데리고 있으면 어쩔까 싶어. 농사도 같이하고 민박집 청소도 시키고. 그러다 보면 자네도 외롭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볼때기가 포슬포슬한 감자 같아야.”

올해 고향으로 내려온 초등학교 동창 마누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하고 같이 일하는 병원에 아는 분에게 석구씨 얘기를 했더니 참한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데. 한번 만나 볼래요?”

“그러지, 뭐.”

“나이는 59세고 혼자 사는데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면서 연인처럼 지내고 싶데요.
얼굴은 좀 그래도 감자같이 동그랗고 복스럽게 생겼다고 하네요.”

“좋은 생각이네요.”

하기야 나도 거의 20년을 혼자 살았으니 같이 지내면 어쩐지 불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 여인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만날 날짜를 잡고, 입을 옷도 사고 염색을 겸한 이발도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전날 저녁, 친구 마누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년 미친년이어요.
만나는 조건으로 한 달에 500만 원씩 주라고 한대요.
자기가 얼마나 잘난 년이어서 그럴까? 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그리고 통닭집 아르바이트나 하는 주제에. 내가 머리를 하러 미장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도 미친년이네 하면서 100만 원도 많소 합디다.”

나는 잠시 현기증이 일어 마루에 주저앉고 말았다.
왜 요즘 사람들은 만나는 것도 돈으로 환산할까. 그 여자도 그렇지만 미용실 여자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서글퍼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내려왔을 때 진도에서 데리고 온, 7년을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던, 몇 번이나 장염에 걸려 내 속을 뒤집어 놓던, 아침마다 물과 밥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부를 주고받던, 내가 나타나면 얼굴을 내밀며 내 손길을 늘 원했던, 단 하나의 동반자였던 옥금이가 죽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