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을 고아원에 넣어버린 교육 사상가-루소

칼럼
자식들을 고아원에 넣어버린 교육 사상가-루소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36화)
  • 입력 : 2024. 08.30(금) 09:45
  • 영암일보
▲강성률 철학박사
루소는 그의『참회록』에서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자위행위의 버릇과 음부노출증(이로 인해 그는 몽둥이찜질을 당할 뻔도 했음)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약간은 자랑스럽게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를 낳은 지 열흘도 못되어 사망한 어머니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루소는 끊임없이 모성애를 동경하였다. 그리고 열여섯 살쯤 되던 해에 만난 드 바렝 부인이 그의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13년이나 연상인 그녀는 루소를 ‘어린 것’이라 불렀고, 루소는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젊고 아름다운 그녀는 루소와 애인의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루소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말았다. 한 사람의 애인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바람기가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다. 루소는 10여 년에 걸친 그녀와의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베네치아의 매춘부와 또 다시 난잡스런 관계를 맺는다.

그 후 파리의 하숙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한 순박한 처녀를 만나 23년 동안의 동거 끝에 마침내 결혼을 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났는데, 루소는 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그 이유는 자식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위대한 교육 이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위대하지 못했던 셈이다.

루소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였다. 수공업자, 신부의 조수, 비서, 유랑극단의 단원, 토지등기소 직원, 외교 업무의 서기를 거쳐 지휘자, 오페라 작곡가, 음악 교사, 희곡작가 등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렇게 안정되지 않은 생활 때문에 루소는 여러 번 거처를 옮겨야 했으며, 도둑질과 사기, 무위도식을 일삼는가 하면 얌전한 여자에 대해 중상모략을 자행하였고, 삼류 소설책을 분별없이 읽어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20년 동안의 사색 끝에 완성된『에밀』은 루소를 유명하게 만들고 말았다. 자연 중심의 교육 이념을 제시한 이 소설은 루이 16세의 왕비가 이 책을 읽은 후 농사를 짓고 우유 짜는 부인네의 흉내를 내었다는 일화에서도 그 영향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에밀』은 파리 고등법원에 의하여 불태워져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고, 그 저자에 대해서도 체포 명령이 발부되었다. 루소는 비밀리에 도망하였다.

그는 약 4년 동안 유럽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1770년 여름, 파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루소의 말은 다음과 같다. “이렇게 나는 형제도, 가까운 친구도, 이웃도 없이 세상에서 완전히 혼자 남게 되었다. 평소 남과 사귀기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나를 그들끼리 작당하여 외진 곳으로 내몰았다. 그들은 나를 생매장시키고 즐거워하지나 않을까?”

그러나 죽은 후에 루소의 명성은 엄청난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기간 중 그의 시신은 판테옹(일종의 국립묘지)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과 삶에 얽힌 일화, 심지어 난잡한 성 생활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은『참회록』은 책으로 출판되었다.

프랑스 계몽기를 대표하는 탁월한 교육사상가 루소(1712년-1778년)는 지성에 편중된 계몽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하였으며, ‘문명이 자연적인 인간 생활을 왜곡시켜 사회적 불평등을 조성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제창하였다. 어린이는 아무런 강제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오직 자기의 소질과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소에 의하면, 국가의 정당한 지배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국민 전체의 합의(일반의지) 뿐이며,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사회계약인 것이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