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과 여의주

칼럼
말똥과 여의주
  • 입력 : 2024. 08.30(금) 09:47
  • 영암일보
▲김백호 영암일보 대표이사/법학박사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산문(散文)에 다음의 귀한 글귀가 있다.
"백호 임제가 막 말을 타려할 때였다. 하인이 나서며 말렸다. '나리, 취하셨어요. 가죽신과 짚신을 한 짝씩 신으셨는데요' 백호가 꾸짖으며 말했다. '길 오른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테고,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짚신을 신었다고 할 텐데,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이로 미루어 말하자면 세상에서 보기 쉬운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으나, 보는 방향이 같지 않으면 가죽신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껴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역시 자신에게 여의주가 있다 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그렇다.
보는 방향이 같지 않으면 짚신인지 가죽신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 하고,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는 그 실체의 객관성을 떠나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나쁜 사람' 또는 '경계의 대상'으로 규정 하기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갈등이 연이은 폭염처럼 심한 것 같다. 속살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입장만을 내세워 관철 시키려는 집단 이기주의와,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여 다른 견해는 무시하고 거부하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연암은 말똥구리는 말똥을, 龍은 여의주를 소중히 여긴다고 가르친다. 둘다 '내 것에 있는 것'에 만족하여 스스로를 다독인다는 뜻이다. 이 '자분자족(自分自足)'은 타인을 배려하는 생명존중의 시발점 이다. '내 것'에 대한 가치는 '타인의 것'을 먼저 배려하고 존중 했을 때 지켜지고 소중하지 않겠는가.
이 '자분자족'과 함께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팎에서 새끼와 어미 닭이 동시에 서로 쪼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에서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수행자를, 어미 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을 주는 스승으로 비유한다. 제자는 알에서 수양을 통해 쪼아 나오고, 스승은 제자가 무르익었을 때를 잘 보살피고 관찰하다가 깨우침의 길을 열어 준다.
한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생명들이 서로 화홥하여 더불어 살아가라는 뜻이다.
말똥구리가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말똥을 아끼 듯, 용 역시 자신에게 여의주가 있다 해서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듯이 우리 모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넉넉한 마음을 내어보면 좋겠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