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배반

기고
미국의 배반
<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 입력 : 2024. 09.13(금) 10:04
  • 영암일보
▲이병록 소장
저자 리차드 로빈슨은 미군정 초기에 대민 정보수집 분야에서 일했고, 미군 24군단 사령부 정보과에서 점령기 전사 편찬 업무를 담당했다. 이 책은 1947년과 1960년에 발간한 ‘미국의 배반’이다. 미군 군정기에 남한에 대한 준비가 부족과 대처 미흡에 관한 내용이다. 책 제목이 ‘준비 안 된 미군정‘ 혹은 ’미군정의 실수‘가 더 맞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 38선 분단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있다. 비슷한 얘기를 들었지만, 글로는 처음 확인한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극동 근해에서 미국 잠수함 활동을 제한하고, 미국 선박이 38선을 넘지 않는다는 장기간에 걸친 협약이 있었다. 따라서 38선 분단은 이전에 서로 협약한 해양 경계선을 육지로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대부분은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미·소의 한반도 분단과 군정 통치 분야 위주로 내용을 정리한다. 미국은 일본 점령을 위해서 수백 명의 군정 요원들과 통역요원들을 최소한 1년 이상 교육했다. 이들 중에서 한국에 온 군정 요원들은 목적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 중장 자신도 오키나와에서 급파되어 민정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군 선발대는 첫 번째 업무로 조선호텔을 인수하고, 일본이 항복한 것을 기념하여 일본군 최고 장성들과 정부 고위 관리를 위한 연회를 열었다. 며칠간 연회가 계속되고, 대화를 위해 찾아온 한국인은 문전박대를 받고 쫓겨났다.
저자가 주장한 미국의 가장 큰 실패는 여운형이 만든 인민공화국을 부정하며 적대시하면서, 증오 대상인 일본 관리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고문관 언더우드 박사조차도 농촌지역을 순회하고 돌아와서 인공이 가장 강력하고 활동적인 조직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소련은 인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방 인민위원회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여, 지방에서 자치적으로 행정이 유지되었다.
이후 훈련받지 못한 미국인과 종종 선교사들이 추천한 조선인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임용한 조선인은 영어를 하고, 옷을 서구식으로 잘 입은 사람이었다. 한국 전문가가 절대 부족한 하지 중장은 최후 수단으로 선교사 아들인 해군 중령을 보좌관으로 임명했는데, 그가 노점상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상 유지 정책에 반대한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로 치부하는 반공주의자일 뿐이었다.
점령 이후 2년 동안 식량 공급은 미국에서 대규모로 수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폭등이 일어났다. 자유 경제 체제라는 이념으로 경제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미곡가격자유화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할당된 쌀 양은 농민동맹 등 단체 대신에, 지주나 경찰로 구성된 지역위원회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게 내버려 뒀다.
저자는 소련 통치의 거칠고 부당한 폐해도 지적한다. 소련 군대는 몽골에서 신병을 많이 보강했는데, 생활 수준이 낮아서 초기에 많은 민폐를 끼쳤다. 소련은 남한을 ‘지상의 지옥’, 북한을 ‘실질적인 낙원“이라고 선전하였다. 미국이 실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유엔위원단을 보내자고 제안하자, 오히려 소련이 반대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북한에서 토지 분배는 지방 인민위원회에 의해서 정치적 기류에 따라 몰수하고 분배할 때 유한계급이 몰래 이권에 개입하였다. 소련에 대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소작인을 포함하여 농업 인구의 많은 사람이 소외되었고, 식량 징수가 과중하여 농부들은 토지개혁이 아무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947년 여름 동안 적어도 매일 6천 명의 사람들이 월남하였다.
일본인 소유였던 방대한 양의 산업시설에 대해, 미군은 본국 지시에 따라 군수물자 생산이 가능한 모든 시설을 파괴하였다. 소련은 전리품으로 간주하여 상당량을 소련으로 보냈다. 그리고 전쟁 중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국 산업화는 우리 손으로 일으킨 것이다.


미 군정기 한국 정치-여운형, 김구와 이승만

이 책은 미 군정기에 24군단 사령부 정보과에서 대민 정보수집 분야와 점령기 전사 편찬 업무를 담당했던 리차드 로빈슨이 쓴 책이다. 1947년과 1960년에 '미국의 배반'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는데, 실제 내용은 '준비 안 된 미군' 혹은 '미군정의 실수'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에 '건국 전쟁'이라는 영화에서 다른 정치 지도자는 소개가 없거나 헐뜯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운형의 죽음에 대하여 "그의 죽음으로써 진보적 민주주의자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를 죽인 것은 암살자 총알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국 정책이었다"라고 평가한다.

저자의 이런 평가는 개인적 성향에 따른 것일 수도 있으나, 좌우익 간의 극단적 대립을 통합할 인물로 여운형을 꼽았기 때문이다. 공개된 CIA의 미국 비밀문서에도, 하지가 여운형에게 좌우 통합 기대를 걸었고, 여운형이 죽자, 김규식에게 걸었다. 하지만 민정 이양 시기가 촉박해서 포기했다는 당시 미국 평가와 다르지 않다.

여운형은 총독부 정무총감에게서 치안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일본 군부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인민 안전위원회'로 개칭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건준의 경찰 기능을 부정하면서 불법화하려고 하였으나 여운형은 굴복하지 않았다.

한편 미 24군단장 하지 중장은 오키나와에서 한국과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부임했다.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본국에 문의할 정도였다. 참모들은 인공 대표자들이 일본 지원을 받고 있으며, 특정 단체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직접 대면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결국 친일파에게 다시 정부 요직을 맡긴 미군 초치에 유혈 참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놀드 장군이 10월 10일에 언론을 통해 인공을 공박하였다. 여운형이 11월 12일에 인공을 탈퇴하여 더 온건한 조선인민당을 만들면서, 여운형 추종자를 포함한 핵심 인물이 떠났다. 바로 이어 미군정은 인민공화국 명칭에서 '국' 자를 없애자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고, 미국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 장군이 12월 12일에 인공을 직접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몇 단계를 거치면서 여운형 영향력과 인공 몰락을 부른다.

외국에서 투쟁해 온 지도자들은 투쟁 성격과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모순된 상황 조건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국가 명칭에 대해서 우익은 대한민국, 좌익은 조선인민공화국, 중도는 고려공화국이 아니면 대한민국을 선호하였다.

여운형이 미군정과 함께 극좌 공산주의자와 싸우면서 중도 좌익 세력을 통합하려고 애쓰는 동안, 극우파는 공산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합작 논의 파괴에 전력을 다했다. 우익 일파가 내리는 좌익에 관한 규정은 단순했다. "우리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는 모두 좌익이다."

미군 점령 6개월이 지나서 미국 국무부가 한국 정치 문제에 대한 첫 충고는 이승만과 김구를 멀리하라는 것이다. 이승만은 과도입법의원 45명 중에 우익이 43석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가 좌익을 편애한다고 공격할 정도였다.

이승만은 김구와 경쟁에서 이긴다.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하지의 공식적인 고문 자격을 얻는다. 독립촉성국민회를 장악하여 세력을 넓혔다. 신익회가 이승만과 김구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배려하다가 이승만에게 개인적인 승리를 안겨 준다.

장택상은 미국 정치고문에게 "이승만은 마음이 넓어서 김규식, 여운형과 협력할 것이다. 결점이 있다면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한다는 것뿐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김구는 무력 통일도, 이승만 독재 치하로 전락도 원치 않았다. 김규식과 마찬가지로 이승만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가졌고, 애국심 개념 등이 달랐다. 현실 정치와는 동떨어져 있었던 두 사람은 좌우익 압력 때문에 힘을 합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명성과 재계의 지원, 정권에 확신하고 있던 이승만은 김구를 2인자로 삼았다가 간접적으로 죽음으로 이끌었다. 뉴욕타임스는 고위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김구 죽음은 이승만 정부를 전복하려 했던 군사쿠데타 음모가 발각된 결과라고 보도했다." 김구는 단독정부 수립이 남북을 영구 분단시킬 것이며, 결국은 군사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확신했다.

'건국 전쟁'은 대통령이 전쟁에서 도망쳐서 국체를 보존했다고 설명하는데, 이 책을 보면 김구는 소를 잃을 것을 이미 알았고, 이승만은 외양간을 갖는 것에만 욕심을 부리고,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친 것이다.




[약력]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