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여기서만은 조심... 송가인이 자란 곳

칼럼
노래자랑, 여기서만은 조심... 송가인이 자란 곳
[이병록의 신대동여지도, 진도군]
  • 입력 : 2024. 12.13(금) 09:36
  • 영암일보
▲이병록 소장
진도에 가기 전, 한 진도 출신 지인에게 고향 자랑거리를 물었을 때 돌아온 첫 답은 "가수 송가인"이었다. 진도에 도착하니 '송가인로'라는 이름의 길이 있었고, 송가인 생가를 찾는 관광객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흔히 "진도에서 노래 자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만큼 진도는 민요와 노래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심에는 진도 아리랑이 있다.
진도 아리랑은 육자배기조 특유의 구슬픈 선율과 한의 정서를 담고 있다. 아리랑은 본래 논노래, 들노래, 뗏목노래 등 민초들의 노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노동요였다고 한다.
고정옥의 <조선민요연구>에 따르면, 1865년 경복궁 중수 당시 팔도에서 모여든 부역꾼들이 서로의 일노래를 주고받으며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진도 아리랑은 슬픔을, 밀양 아리랑은 흥을, 정선 아리랑은 소박한 정서를 담고 있다.

역사의 숨결... 신비의 바닷길, 진도가 품은 전설

하지만 진도 아리랑마을 관광지는 다소 쓸쓸했다. 의신면에 세워진 '의신들 노래가사'도 비석에 새겨져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듯했다. 가사는 "이 전답 도랑신네 도랑신네 매진지 해가지고····벌기 짐승도 속고···· "다. '벌기 짐승'은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동물이며, '벌기'는 '벌레'의 방언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논두렁 정기라도 있어야 복을 받는다고 농담하곤 한다. 논두렁과 도랑신처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민속적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매년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남해와 서해의 다른 바닷길도 있지만, 진도 바닷길은 '뽕할머니' 전설 덕분에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회동 마을에 호랑이가 나타나 농작물과 집을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도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남은 할머니가 용왕께 기도를 하자, 바닷길이 열렸다는 전설이다.

▲뽕할머니 신당은 새롭게 지었다. 마을 한쪽 끝에는 신당이, 다른 쪽 끝에는 교회가 마을을 지키고 잇다. 마을 앞 섬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 이병록


진도의 바닷길과 전설을 따라 12킬로미터를 걸어서 금갑 해안에 도착한다. 이곳은 삼별초궁녀둠벙에 물건을 넣으면 나온다는 곳이다. 출출함을 느낄 무렵, 버스 정류소 앞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 할머니께 물으니 할머니가 "나도 물건을 팔고 싶지만, 조금 더 가면 식당이 있으니 거기서 드시라"라고 하신다.

식당에서는 혼자(1인)라고 밥을 팔지 않는다. 살기가 팍팍해지니 전라도 인심도 팍팍해졌나. 다시 다른 가게로 가서 막걸리를 시키니 안주하라고 반찬을 듬뿍 주신다. 그래, 이게 살아있는 전라도 인심이지 싶었다. 할머니는 "앞 섬과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바람이 불면 섬사람들이 여기서 먹고 자고 했고, 그 돈으로 얘들을 키웠다"라고 옛일을 회상하신다.

막걸리로 허기를 달랜 후, 나는 곧바로 뒷산 금갑진성을 찾았다. 함선 12척의 만호가 거주하던 진이다. 이순신 장군도 고흥에 있는 발포 만호를 거치셨다. 성곽 일부와 북벽과 서벽, 옹성 등이 남아 있는데, 팔을 들어 올려 끝단이 닿으니 약 2미터쯤 되겠다. 가장 보존이 잘된 곳은 민가가 담벼락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금갑진성금갑진성은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은 민가 담장이다. ⓒ 이병록


금갑이 있는 의신면은 백구 상까지 세워진 충견 진돗개로 유명한 동네다. 대전에서 7달이나 걸려 약 300km 떨어진 주인 박복단 할머니 집을 찾아왔다. 또 주인이 죽자 10일 동안이나 밥을 거들떠보지 않고 방을 지킨 진돗개도 바로 이 의신면 지역으로, 사람과 동물이 맺는 신뢰를 생각해보게 한다.

변화와 공존의 진도

낙안읍성처럼 사람과 성이 공존하던 남도석성은 주민 이주 정책으로 과거의 그 매력을 잃어버렸다. 차를 태워준 주민이 내게 이주 현황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10여 년 전에 왔던 그 성이 아닌 줄 알았을 것이다. 과거 성에서 내려다보던 마을 풍경은 사라지고, 새로 조성된 관청만이 텅 빈 모습을 드러냈다. 성 앞 세운천에 있는 단운교와 쌍운교는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 앞 동네 앞산의 이름은 '앞산'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앞산의 용트림하는 바위가 새삼 눈길을 끌었다. 한옥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그 입구는 흔한 양옥집이 가리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운림산방 옆에는 뜬금없이 지어진 삼별초 홍보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차라리 이를 한옥마을 안에 통합했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진도 역사와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려면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도의 부둣가에서 마주친 팻말은 우리의 산업 현실을 보여준다. 팻말은 한글로 쓰인 제목 아래 3개의 외국어가 적혀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고기잡이가 유지되지 않는 현재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솔비치로 가는 길에는 서해랑 표지가 보였지만, 찻길이 위험해 걷기 코스가 안쪽으로 바뀌었다. 다만, 서해랑길만 걸으면 신비의 바닷길 같은 진도의 몇 가지 보물을 놓치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를위한 표지판.최소한 3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어업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 이병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 뉴스에도 실립니다.

[약력]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