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기고
검정고무신
  • 입력 : 2021. 01.11(월) 12:40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검정고무신



유년 시절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겨울을 빼놓고는 맨발과 더불어 검정고무신과 함께하였다. 몇몇의 애들이야 아니었지만, 그 질기고 질겨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고무신의 싱싱함을 원망하면서, 쏘다니고 쏘다녀도 어디 날카로운 곳에 찔려 찢어지지 않는 이상,-하기야 그것도 웬만하면 어머니께서 실로 꿰매 다시 신게 햇지만- 늘 건재하여 징그럽기까지 하던 검정고무신.

더구나 우리 부모님께서는 발이 커질 것까지 대비하여 터무니없이 넉넉한 치수를 사 온 터라 걸으면 뒤축이 촐싹이면서 신을 질질 끌고 다녀야만 했다. 혹시나 비가 올라치면 고무신 뒤축에 고인 빗물이 철퍼덕 소리와 함께 엉덩이까지 튀어올라, 바지의 뒷부분이 항상 축축해지곤 하여 얼마나 성가셨는지. 하지만 당시 별다른 놀이가 없었던 우리들에게는 이 검정고무신이 얼마나 화려하게 쓰였던가.

그림 : 김덕남

소꿉놀이를 할 때면 한 칸의 어엿한 집이 되거나 연못이 되었으며, 흑을 버무릴 때면 물 긷는 두레박이었고, 친구들끼리 고무신을 한 짝씩 연결하여, 칙칙폭폭 칙칙폭폭 어디까지 왔느냐 광주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느냐 대전까지 왔다 하면서, 아직 보지도 못했고 책에서만 보았던 기차놀이도 하였으며, 시냇가에서는 가만가만 미꾸라지 잡는 어항이었고, 땅강아지 싣고 가는 조각배였으며, 물장구치다가 물싸움 할 때는 물 담는 바가지였고, 냇둑을 발가벗고 달릴 때면 아랫도리를 가리는 훌륭한 가리개였다.

그리하여 어느덧 시나브로 닳고 닳아서 밑창이 뚫리면 집안 한 쪽에 조용히 놓여 있다가 우리가 가장 먹고 싶었던 달콤한 엿과 시원한 아이스께끼가 되었던, 검정고무신.
요즘에는 한복을 입고 도사 티를 내는 사람이나 스님들이 신는 좀더 지엄한 존재가 된, 검정 고무신.

그림 : 김덕남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