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관리가 되기 위한 가장 빠른 코스였다. ‘대과’라 불리는 문과는 총 744회가 시행되어 15,151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중 최연소 합격자는 고종 때 13세의 이건창이요. 최고령 합격자는 85세 정순교였다. 일찍 등과해도 19세가 되어야 벼슬이 주어졌고, 강화학파 영재 이건창과 담양 소쇄원의 소쇄옹 양산보가 그 케이스요. 최다합격자는 이율곡으로 9번 응시해 모두 1등을 차지해 ‘9도 장원랑’이라 불렸다.
3대에 걸쳐 소과 합격자가 배출되지 않은 가문은 ‘잔반’이라 하여 양반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다 가산을 탕진해 패가망신이 부지기수였고, 그나마 85세라도 입격한 행운이 따르면 임금과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해 특별한 은전을 받기도 했다.
합격자 평균 연령은 36.7세로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응시자격은 상민도 가능했으나 준비 없는 상민들은 감히 응시할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중죄자, 탐관오리의 아들, 재가녀, 서자, 얼자는 윈칙적으로 문과응시가 제한됐다.
소과 합격자는 백패증서, 대과합격자는 홍패와 고향에 돌아가 잔치를 베풀수 있도록 상금으로 10냥을 받아 금의환양했고, 고을 원님도 찾아와 격려했으며 어사화를 꽂은 채 3일 유가를 즐기고 한양의 고관들을 찾아 인사를 드리다 사윗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합격한 동기들은 모두 ‘용두회’에 가입을 하는데, 요즘의 검찰문화를 능가했다고 한다.
|
과거의 종류는 3년마다 실시되는 식년시와 특별시험인 별시라 하여 증광시 등 15가지나 되었다. 별시 중 특이한 시험은 현직 관리들 중 종5품 통덕랑 이하의 벼슬아치들을 대상으로 임금이 친견하는 중시를 치르게 해 몇 단계씩 승차시키는 특전도 베풀었고, 노인들을 우대하는 기노과도 실시해 경로정신을 앙양하기도 했다.
정기코스인 식년시의 절차는 식년시 시행 1년 전 성균관과 지방 8도 관아에서 총140 명을 선발, 초시를 거쳐야 했는데 성균관 30명, 경상도 30명, 전라도 25명, 함경도 5명 등 향교와 서윈의 수를 감안해 배정했다.
합격자에게는 ‘초시’'라 불렀고 소과 응시 자격이 부여되었으며 소과는 ‘사마시, 명경과’라고 하여 유교 경전 위주의 생원과 시, 부 위주의 진사과 각 100명씩 총 200명을 합격시켜 백패를 수여해 성균관 입교자격이 주어졌고, ‘성균관 유생, 태학생’이라 불렀으며 숙식 제공에 학비 무료로 임금이 성균관을 가끔 방문해 시험을 치러 우수자는 전시에 바로 응시하는 특전도 부여했다. 이리하여 대과는 소과 합격자 200명에 성균관 추천 40명 총 240명이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를 거쳐 최종 33명을 선발하는데 전시는 임금이 친림하여 나라의 중대사안을 과제로 걸어 출제해 임금의 의중을 제대로 꿰뚫은 자가 장원으로 뽑혔다. 답안지가 무려 10여 미터가 되기도 했다.
초시부터 전시까지 시험전에 응시자격을 엄격히 관리해 출신 고을 유향소의 향안(신분증명서), 향교의 교안(학생증), 서원의 교안(졸업증명서) 이 세 가지를 ‘청금록’이라 해 응시원서가 되는 기본서류였다. 또 시험지에는 사조단자라고 일컬어 부, 조부, 증조부, 외조부까지 시험지 우측에 기재하는데 그 난은 특별관리해 부정을 예방했다.
갑과 장원은 종6품, 2~3위는 정7품, 을과 7명은 정8품, 병과 23명은 정9품의 벼슬이 내려진다. 그런데 급제했더라도 33명 전원 임용이 안 되었다. 갑과 3명과 을과 7위까지의 10명은 즉시 임용되었으나 병과 합격자 23명은 무려 3년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의 관직 중 이조판서가 가장 요직으로 모두가 선호했다. 이조에서 임용을 좌우했고 임용 후라도 이조판서는 근무성적이 뛰어난 자를 ‘홍안록’에 등재, 고위직 예비후보로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이 줬기 때문이었다.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