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기고
고구마
  • 입력 : 2021. 02.15(월) 10:40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고구마



아버지는 자그만 울타리를 만들어 두엄자리 옆 거름기가 많은 흙을 퍼다 반반하게 쌓고, 겨우내 작은방 구석에서 옥수숫대로 엮은 울타리 안, 우리의 식량이 되다 남은, 새순이 보일락말락하던 고구마를 꺼내 그곳에 심었다.

순들이 수북수북 자라고 우리들의 작은 뼘으로 두 뼘 이상이 되면, 더러는 어머니는 평상에 앉아 그 순을 잘라 벗긴 다음 뜨거운 물에 대쳐, 된장을 무쳐 반찬을 만드시곤 하였다.

앞마당 앞에 있는 밭에 이랑을 돋우고 식구들은 순을 잘라 적당한 간격으로 온 밭에 심고는, 혹시나 시들지 않을까 하며 날마다 물을 주어서 가을까지 키워냈다. 점점 고구마 잎들은 푸르름을 더해 온 밭을 덮어갔고 어머니는 이제 그 순을 뜯어 반찬을 만드셨다.

가을이 되어 잎들이 노래지면 식구들은 어느 날 호미로 고구마를 캤다. 크고 살찐 고구마가 매달려나오면 명순이는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고구마는 다시 작은방 구석에 마련한 옥수숫대 울타리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아마 우리들은 당시 고구마를 감자로, 감자를 북감자로 불렀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고구마는 일본에서 감자는 청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기 대문이었을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어머니는 5일마다 열리는 영암장이나 독천장이 되면 항상 꼭두새벽에 일어나 솥에 고구마를 쪘다. 그리고 어스름 새벽, 똑같이 고구마를 찐 마을사람 몇몇과 함께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이고, 집에서 시오리나 되는 장 모퉁이에 하루 종일 앉아 그 고구마를 파셨다. 우리 동네에서 나는 고구마는 밤고구마여서 항상 잘 팔렸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날이 어두워지면 나와 동생들은 대나무 평상에 앉아 잔등너머 돌아올 어머니를 늘 기다렸었다. 그 고생을 뒷전에 둔채, 동생들과 ‘오늘은 뭐 사왔으면 좋겠다’하며 기대의 탑을 쌓다가 부수곤 했지만 언제나 만족은 없었다.

[그림=김덕남]

그 먼길의 어머니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메인다.

겨울이 되면 고구마는 하루 한 끼나 두 끼의 우리들의 식량이 되었다.

조밥과 더불어 내가 가장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어서 투정만 가득했지만 그때는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한 끼였다.

작은방, 고구마가 썩는 냄새를 맡으며 나는 숙제를 하거나 딱지를 만들거나 연을 만들었다.

깊은 겨울밤, 초꼬지의 연약한 불빛을 마주보며 나는 동생들과 학교에서 배운 동요를 부르며 긴 밤을 보내기도 하였던 것 같다. 불빛의 희미함에 자꾸 그을음이 올라오는 초꼬지불 앞으로 몸을 맡기며, 겨울방학 숙제인 그림일기도 그리곤 했다.

고구마.

지금은 술에 길들여진 뱃속 때문에 먹으면 속이 다려 잘 먹지도 못하는 고구마.

하지만 우리 집 살림살이의 대부분이었던 고구마.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