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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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극장
  • 입력 : 2021. 02.18(목) 16:55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가설극장



어릴 적 영화를 본다는 것은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축제였다. 그래서 오후가 되면 포스터를 가득 붙인 트럭이 마을 어귀에 들어서며 마이크 소리를 울리며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어쩌고 저쩌고…” 하면 동네 꼬마들은 그 트럭의 꽁무니를 신나게 따라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어디선가 가설극장이 선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온몸이 설렘으로 가득했으나 어린 나이에 늘 그 놈의 입장료가 문제였다. 하여 대부분의 아이들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면 무단침입을 궁리하였고, 어쩌다 성공하기도 해지만 대부분 잡혀서 끌려 나와 군밤을 맞거나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극장측이 영화가 반 이상이 지나면 둘러쳐진 흰 천막을 걷어내곤 했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나머지 영화를 보곤 했었다.

천막 주위를 지키는 사람이나 우리나 그 틈의 상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반대편에 몇 명씩 모여있다가 뒤편의 아이들이 궁금해 감시인이 뒤로 돌아갈 때, 얼른 천막을 들치고 순식간에 들어가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 맛이 솔찬하여 어머니께서 주신 돈이 호주머니에 있어도 그 짓을 자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적, 가설극장이 서고 하얀 스크린에 흑백영화가 상영되면, 변사가 그 옆 단상에 올라가 영화 내용을 감칠맛 있게 설명하는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는 하지만, 지금의 기억 속에는 그 영화의 내용도 전혀 아는 것도 없고 변사에 대한 기억도 흐릿하여 더 이상 이야깃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시절 본 영화의 제목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동백아가씨》‧《월하의 공동묘지》‧《뚱뚱이와 홀쭉이 논산훈련소에가다》‧《황혼의 부르스》 등이 아련하게 생각이 난다.

《동백아가씨》는 신성일과 엄앵란이 나온 영화였는데, 무슨 카바레에서 신성일이 다른 여자와 춤추고 있는 것을 깜짝 놀라 바라보던 장면이 생각나고, 《월하의 공동묘지》는 묏자리가 갈라지는 장면에 너무 놀라 한동안 뒷간을 못가고 마당에 비료 포대를 깔아놓고 똥을 누곤 했던 것 같다. 《뚱뚱이와 홀쭉이…》는 몸이 뚱뚱한 양훈과 빼빼한 양석천이란 코메디언이 배우로 나와 군대생활을 하며 웃겼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영화의 백미는 역시 《빨간 마후라》였다.

[그림=김덕남]

간죽정 냇가에서 상영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3,40명 모여 영화가 상영되자마자 우르를 천막을 걷고 극장 안으로 돌진했었다. 물론 극장 측이 우리를 몰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이 거의 출연하여 화제가 됐던, 파일럿의 사랑과 우정, 전투기의 공중 전투, 전투기로 다리를 파괴하는 장면들을 그런 영화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을 웃고 울렸으며 영화가 끝나자 모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쳤었다.

그 영화 땜에 《빨간 마후라》 라는 가요는 순식간에 거의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우리 동네 ‘박순자’라는 내 아줌마뻘 되는 소녀는 눈만 뜨면 그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입으로 나오는 대로 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사에 우리들은 깔깔대며 웃곤했다.

“빨간 마구라는 하늘에 사난이. 하늘에 사난이는 삘간 마구라. 빨간 마구라를 목에 두르고….”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