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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굶어 죽지 않게,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2011년 소설 ‘흑산’에 실린 ‘오동희의 기도문’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연설이다.
내게도 바라는 것이 있었다. 어릴 적 설날과 소풍, 공부와 입시, 결혼과 아이, 일과 승진 등…. 한 때의 꿈이었다. 이루기도 했고 그러지 못한 때도 있었다. 잠시 버벅거리던 시간과 선택의 차이만 있었을 뿐, 대부분은 이뤄졌다.
70년대 초에는 ‘국민소득 천 달러, 수출 백억 달러’ 기치 아래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국민교육헌장 외우기, 풀베기와 퇴비증산에도 순위가 매겨지던 때였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 수단은 목적이 되기도 했다. 그 목표가 달성되면 자가용, TV, 세탁기가 있는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늘날엔 수출·입 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지나 4만 달러로 향하고 있다. 사시사철 전기, 상하수도, 냉·난방이 가능해졌으며, 최근엔 코로나19가 낳은 소득감소와 소비위축을 염려하며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지급됐다. 국가가 통치자에서 국민의 생활을 돕는 지원자가 된 것이다. 더 이상 굶지 않아도 되고 매 맞아 죽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삼십여 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얻었는데도, 행복해하는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다. 왜 그럴까?
감추어진 역사, 지역차별, 계층격차, 불평등이 여전하다는 생각들이다. 반세기 전 목표는 유능한 청년 노동력에 의해 초과 달성됐고, 이만큼 먹고사는 바탕이 되었지만 늘 한쪽이 허전하다. 특히 “여수순천 10·19, 광주 5·18, 4·16 세월호의 진실을 알자. 방사광가속기 등 국책연구시설과 의과대학이 전남에도 있게 하자.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여보자”라는 마음이 더한다.
여기에 고속도로와 국도, 섬 연결, 흑산공항 개항 등 원하는 기반시설 또한 아직도 많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면서 투명하고 건강한 지역균형 공동체 기반이 마련되게 하자는 건데, 다들 이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국가의 일을 국가가 곳곳에서 지연시키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믿음과 사랑을 더한 노력이 희망을 일으키고 있다. ‘평등, 공정, 정의’ 문제도 개선되고 있다. 누구와 비교해도 차별받지 않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며, 키 작은 이에겐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작은 의자가 받쳐지고 있다. 이렇게 국가가 국민의 생활에 어디까지 개입하고 지원해야 할 것인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이 국가를 믿고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주어진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된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며, 그 뉴노멀 시대를 우리나라가 선도할 거라고 한다. 어디가 중심이 될까? 이곳 남도라는 생각이다. 넓고 깊은 산야, 두 개의 바다와 많은 섬 등 특별한 청정자연과 시서화창(詩문학, 書서예, 畵그림, 唱국악) 등 일상에 녹아있는 풍류와 애환은 현대인의 지친 심신을 달래줄 최고의 치료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치 있는 미래를 열기 위해 현재를 잘 가꾸어나갈 시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고 합리적인 소통을 위한 법의 제정과 개정도 필요하다. 21대 국회가 기대되는 이유다. 머지않아 거친 이 시간이 지나면, 경제와 문화가 튼튼한 나라에서 역지사지하며 나눔과 배려를 같이할 행복한 꿈을 꿔본다. 사방에서 “괜찮아” 소리가 들려오는 세상! 우리의 바람이다.
- 본 기고는 글쓴이의 허락을 맡아 익명으로 게재하는 글입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