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권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 조정 시인을 만나다

인터뷰
‘서남권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 조정 시인을 만나다
노작문학상 시집 ‘그라시재라’선정
2000년 신춘문예 등단 이후 첫 수상
  • 입력 : 2022. 10.05(수) 17:15
  • 영암일보
조정 시인과 손녀. 시인은 사진을 건네면서 "내 할머니를 시작으로 한 책이어서 손녀와 찍은 사진도 한 장 보낸다"고 하였다.


“사노라면 굳이 살아지니라. 삶은 구슬과 같다. 금간 구슬도 고요히 아름다운 법이다. 꿰어두어라. 나는 할머니들 곁에 앉아 그것을 배웠다”
조정 시인의 신작 ‘그라시재라’를 여는 시인의 말이다. 여성들의 이야기인 이 시집은 영암에서 살던 여성들의 실화를 서사시로 옮겼다. 첫 번째 시편에 등장하는 소녀는 할머니 집에 마실 온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긴 세월 소녀의 마음 속에 머물러 있던 전라도 여성들이 서남 방언으로 되살아난다.
‘그라시재라’는 모든 시편이 서남 전라도 방언으로 씌었다. 서남 여성들의 목소리가 흡사 환청처럼 들려온다. 동란을 겪으며 자식을, 형제를, 부모를 잃은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움켜쥐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다음 세대를 키워냈을까. 그 감동적인 서사를 ‘그라시재라’는 시로 보여준다.
최근엔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지난 달 22일, 일제강점기 낭만주의 시운동을 주도했던 노작 홍사용의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한 ‘노작문학상’ 제22회 수상작으로 '그라시재라'가 선정됐다. 다음은 조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시집 ‘그라시재라’가 서남 전라도 서사시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시집 출간이 후 어떠한 일상을 보내시고 계신가요?
“축하받기, 약간의 인터뷰, 작은 책방이나 인문학교실에서 독자 만나기를 했습니다. 시집으로 인한 변화보다는 남편이 몸이 아파 간병하는 것이 시집 출간 전후의 제 주요 일상입니다”

- 노작문학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병상에서 남편이 기뻐하고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셔서 저는 덩달아 기쁩니다. ”

- ‘그라시재라’는 ‘당신의 말을 존중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는데 ‘그라시재라’를 읽는 독자들이 시집을 통해서 얻어갔으면 하는 가치관이나 방향은 어떤 것인가요?
“할머니들이 가졌던 지혜, 어머니가 가르쳐준 탯말을 아끼고 자유롭게 사용하자죠”

- 시집을 출간하시면서 시인님의 삶 속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경험이나 이념이 있으신가요?
“‘그라시재라’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첫째, 여성이 있는 곳에는 페미니즘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페미니즘이 서구 사조를 공부한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회적 입장이 열악하던 시기에도 여성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 구현을 했고 옳다 여기는 바를 실현해왔습니다. 의지는 있으나 사회적 틀이 옥죄어 걸음이 더디던 선대의 현실을 지켜보며 여성들은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켜 가고 있습니다”

-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이발소 그림처럼’시는 두 개의 꿈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한 시로 지루한 삶을 시속에서 대화체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화하는 상대는 누구이며, 당시 조정시인님이 시를 작성할 때 시 속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시에 등장하는 ‘두 편의 꿈을 꾸었다’는 실제로 꿈을 꾼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잠식해 들어가는 나와 내 밖에 세계로 유영하는 나를 짚어보는 모습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탱자나무 가시에 심장을 얹은 듯 혹독한 날들도 있지만 이것은 견디어야하고, 반죽음 반 삶의 태세로 천적을 방어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처럼 우리 또한 어느 순간 자기를 소멸시켜 자기를 지키는 것 아닐까요?”

- 시인님께 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까지 조정시인으로서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말보다는 편한 자기표현 방식이고 지치지 않는 놀이고 질리지 않고 즐기는 공연요. 제 삶은 한 문장으로요?(웃음) 우왕좌왕하다 넘어지며 아름다운 것 찾기?”

- 작업하시면서 시의 소재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며 어떻게 작업을 진행하시나요?
“어디에서나 얻는데 비애의 밀도가 강한 상황에 집중되긴 합니다. 노상 짬짬이 씁니다. 그다지 성실한 시인은 못 됩니다”

- 앞으로 쓰시고자 하시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어떤 작품들을 준비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첫 시집에 옹관에 대한 시 세 편을 실었습니다. 옹관과 옹기문화 관련 시들을 더 쓰고 싶습니다. 그동안 써둔 시들을 다양한 소재의 시들과 환경운동하며 쓴 시들로 나누어 시집을 내려고 합니다”

- 지금까지 작성한 시인님의 작품 중 시인님이 가장 공들이고 특별히 여기는 작품이 있으신가요? 혹은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 시가 가장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시집의 서시는 공무도하가를 소재로 쓰려는 시도를 십 년쯤 하다가 쓰여진 시라서 각별합니다. 옹관 시리즈가 고양의 흙과 정신과 역사가 담겨 각별합니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물에 비친 찔레꽃’ ‘엄니, 탕 소리 나면 뒤 좀 돌아봐주소’ ‘새야 새야 파랑새야’ ‘치술신모, 그리움의 신들’입니다. 애틋한 여성성, 역사 속에서 여성의 존립, 여성성의 신화 같은 것들이 담겨서요”

- 박용철, 서정주, 이상 등의 시를 각별하게 여기신다고 하셨는데 해당 시인들에게서 조정시인님이 어떤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해당 시인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탁월한 자기 미학을 가진 분들이지요. 시 쓰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넘어야 할 한국시의 산맥들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이보다 훨씬 많은 시인들이 그러한데 왜 이분들만 거론되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 고향 영암은 시인께 어떤 의미인가요
“고향이라... 제 애틋한 그리움과 자존감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