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VS 필로폰, 한번의 즐거움을 위해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 것인가? 살게 할 것인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일과 후의 술 한 잔! 혼술이든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는 술자리든 적당한 음주는 우리에게 힐링과 창조적 영감, 사회적 유대감을 선사해 삶의 여러 면을 유택하게 해준다.
그러나 과도한 음주는 사람 사이에 말다툼을 부르고 음주 운전 교통사고, 가정폭력, 간경화, 조기 사망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양날을 가진 칼처럼 즐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주는 알코올, 음주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 행동이라고도 한다.
인간만이 음주를 즐긴다는 말도 있는데 동물들을 보면 마냥 그런 것만이 아니다. 코끼리나 말레이시아 나무 두더지는 정기적으로 발효된 과일을 찾아서 음주를 즐긴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만큼 음주를 즐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사바나의 초원을 거닐고 있던 과거에는 술을 감당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마셨다면 인지능력과 신체능력이 저하되어 포식자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텐데 왜 인간은 술을 그렇게나 좋아하게 된 걸까?

술 취한 원숭이 가설?
먹을게 풍부하지 않은 야생에서 영장류들은 과일이나 꿀처럼 당이 가득한 음식을 보면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 혹시 모를 식량부족에 대비해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먹어둠으로써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알코올은 자연에서 쉽게 발견되는 물질이다.
식물 중에는 과일이 열리는 종들이 있다. 잘 익은 과일에는 당이 많고, 알코올은 특정한 종류의 효모가 당을 발효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는 과일에 포함된 당을 먹고 끊임없이 알코올을 만들어낸다.
영장류들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구성원들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해도 뭉쳐서 포식자를 물리칠 수 있었기 때문에 알코올에서 얻는 이점이 다른 동물에 비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영장류들은 문명이 발달하고 농사를 짓기 훨씬 전부터도 알코올을 탐닉해왔을 것이며 그게 이어져 내려와 인간들도 여전히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바로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거미원숭이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알코올이 풍부한 나무 열매를 의도적으로 섭취하고 대사 과정에서 알코올을 칼로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가설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자연환경에서는 동물들이 과도한 양의 알코올에 노출되는 일은 결코 없다. 원숭이가 술에 취해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은 자연계에서 관찰하기란 힘들다.

알코올과 종교?
인간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알코올의 이런 생물학적 이점 말고도 또 다른게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알코올은 시냅스에서 신경전달 물질이 방출되는 것을 촉진시키는데, 뉴런들이 계속 고속으로 활성화가 된다. 이렇게 되면 의식은 점점 흐려지고 감정이 격해지며 어지럼증, 환각, 착시현상을 느끼게 된다. 술이 ‘향정신성물질’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술에 또 다른 역할이 바로 종교로 암시된다. 종교는 석기시대 때부터 인간들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종교 활동에는 항상 술이나 마약성 물질이 함께했다고 한다. 뉴버거와 다켈리 교수는 뇌 촬영으로 격렬한 음악과 춤 깊은 명상뿐 아니라 알코올로 인한 뇌 작용이 뉴런들을 비슷한 과열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과열 상태에서 황홀감을 느끼다가도 해마가 탈진을 막기 위해 이런 과열 상태를 억제하게 되는데 이때 대뇌 피질의 우후두정소엽이 크게 억제된다.
이 부위는 외부 세계와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추측되고 있는데 이게 억제돼 의식 경계가 흐려지면 세상과 일체감을 느끼는 초월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사이키델릭 계열의 마약인 LSD도 자아정체성을 유지시켜주는 DMN을 약화시키고, 뇌 가소성을 강하게 해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을 만들어 준다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초기 멕시코 종교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실로시빈 버섯에 든 물질이 LSD와 아주 유사한 물질이라고 한다. 또 과거 조로아스터교에서 마시던 음료 하오마, 엘레우시우스 밀교에서 마시던 키케온은 술 베이스에 LSD 성분이 섞여 있던 음료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이처럼 의식을 해체하고 의식을 뛰어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술이나 마약 물질은 종교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는 수많은 인파를 뭉치게 해 도시를 탄생시키고, 문명의 도화선이 되는 등,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을 상위 포식자로 만들어 줄 다양한 이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술도 결국 마약이다. 인간들은 마약에 중독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술의 의존성과 독성은 다른 마약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살인병기 마약 ‘메스암페타민’
독일과 프랑스는 과거부터 앙숙관계였고 숱한 전쟁을 치러 왔는데 보통은 양국 사이의 벨기에에서 싸웠다. 2차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은 프랑스에서 만든 대규모 참모인 마지노선을 피해 벨기에 아르덴 삼림지역을 빠르게 통과해 그대로 프랑스 심장부로 진격하기로 했다.
허점 찌르기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점은 지형이 복잡한 아르덴 삼림지역을 어떻게 빠르게 돌파할 것인지가 큰 문제였다. 독일군은 여기서 비밀병기 3천500만 개의 ‘퍼비틴’을 준비한다. 우리에게는 필로폰이라는 말이 더 친숙한 마약 ‘메스암페타민’이다.
1887년 독일에서 처음 합성되고 독자적으로 1893년에 일본 나가이 나가요시가 합성하게 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마약 ‘메스암페타민’은 활력과 집중력, 인지능력 개선 등의 효과가 있는 각성제였다. 복용하면 지치지 않는 것은 물론 약 190% 정도로 뇌를 오버클럭할 수도 있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이 각성제를 의도적으로 군에게 보급해서 3일 동안 자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진격했고 전쟁을 시작한 한달만에 파리에 입성했다.
이론상 3일 내내 이동해도 가지 못할 거리를, 전투를 하면서 돌파해낸 것이다. 지치지 않고 두려움을 모르는 군인을 만드는 그 당시 ‘퍼비틴’은 인간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주는 마법의 물약처럼 보였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독일은 월드컵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이 약을 복용시켰고 1954년 월드컵의 승리는 독일이 가져갔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일본은 자살특공대 ‘카미카제’를 운용했다. 당연히 죽으러 가는 비행기에 기꺼이 몸을 실을 사람은 없었기에 자폭 비행기에 탑승하는 특공대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마약 ‘메스암페타민’이 든 차였다.
일본에서는 필로폰이라는 피로회복제로 일반인들에게도 다량 판매가 되었는데 필로폰은 일시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크게 형상시켜주지만 그 후에 몰려오는 부작용은 아주 심각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 일본에서 필로폰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천연마약과 달리 실험실에서 꽤 간단하게 합성할 수 있었기에 1970~80년대 우리나라 부산에서 제조돼, 일본으로 밀수출되기도 했다. 그러다 일본에서 필로폰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자 그 마약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유통되기 시작됐다. 그래서 주로 코카인이나 대마초 복용이 대세였던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필로폰 복용자가 많았다. 마약 ‘메스암페타민’은 왜 중독성이 강하고 위험할까?

유사 도파민과 ‘항상성’
먼저 도파민에 대해 알아야 한다. 도파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이다.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중독되는 마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게임을 하고, 초콜릿을 먹고, 재밌는 영화를 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결국 우리 활동 모두는 도파민이라는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쾌락이 느껴지고 두뇌활동이 형성되어 인내심, 집중력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도파민을 합성해서 밥처럼 퍼먹으면 우린 행복해질까? 우리 몸은 스스로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외계 물질이 들어오면 대부분 소화해서 배설해 버린다. 엄청난 양의 도파민을 먹어서 그 일부가 뇌로 간다고 해도 또 하나의 마지노선을 돌파해야 하는데 그건 바로 ‘혈뇌 장벽’이다.
도파민은 ‘혈뇌 장벽’을 통과하지 못한다. 결국 도파민을 아무리 먹어도 우리를 기분 좋게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수용성인 도파민과 다르게 지용성인 마약 ‘메스암페타민’은 ‘혈뇌 장벽’을 아주 잘 통과한다. 그래서 이걸 복용하면 우리가 자연적으로 가지는 도파민의 양을 아득히 넘어 최대 1200%의 유사 도파민이 뇌 속으로 대량 보급된다. 갑자기 활력이 넘치고 행복해지며 인지능력도 향상된다.
뭘 하지 않아도 ‘유사 도파민’이 충분하기에 굳이 먹고 자지 않아도 별로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우리 몸은 역시 ‘항상성’을 유지하려 한다. 뇌는 이 도파민 슈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도파민 수용체를 줄인다. 도파민 창구를 줄이는 것이다. 같은 양의 도파민 또는 유사 도파민이 있어도 더 적은효과가 느껴지게 된다. 여기서 마약 ‘메스암페타민’을 끊는다면 안 그래도 수용체가 적어진 상태에서 도파민의 양조차 적어지니 성취감 쾌락 등을 느낄 수 없어 삶의 모든 의욕을 잃고 고통과 스트레스만 누적되는 것이다.
결국에는 우울증, 자살충동등을 느끼게 된다. 이미 한번 엄청난 양의 도파민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제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살아있을 이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단 초콜릿에 입맛이 길들여지면 시시한 사탕 따위에선 단맛을 못 느끼는 것과 같다. 뇌가 보상으로 주는 도파민으로는 더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결국 ‘유사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 마약 ‘메스암페타민’의 복용량을 늘려가다가 심정지나 호흡곤란으로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