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쓰고 가는 삶

고전산책
빌려 쓰고 가는 삶
  • 입력 : 2024. 01.25(목) 14:48
  • 한국고전번역원
과거 시대에 말[馬]의 기능은 의외로 다양했다. 사람이나 물건을 수송하는 이동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물론이거니와 통신과 전투에서도 그 역할이 매우 컸다.
더 나아가 수레와 함께 말은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요즘은 말과 수레에서 차량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옛날에 말과 수레가 수행했던 이런 여러 기능과 역할을 차가 대신하고 있다.

한(漢)나라 문제(文帝)는 그 아들 경제(景帝)와 더불어 ‘문경지치(文景之治)’로 일컬어질 만큼 치적이 훌륭한 임금이다. 한 문제 원년에 천리마를 바친 자가 있었다.
그러자 문제는, “황제가 출행할 때, 앞에서는 의장용 수레가 선도하고 뒤에서는 후속 수레가 호위한다. 평소에 출행할 때는 하루에 50리를 이동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출행할 때에는 겨우 30리를 이동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짐 혼자서 천리마를 타고 어딜 가겠는가?”하고는 말을 되돌려 주고 오가는 비용까지 보태 주었다.

그랬던 한 문제가 바로 그 이듬해에는 패릉(霸陵) 언덕 위에서 서쪽으로 수레를 내달려 험준한 비탈길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랬다가 그만 직간(直諫)을 잘하기로 유명한 원앙(袁盎)의 만류로 생각을 접고 만다. 원앙의 말은 이랬다.

“지금 폐하께서 여섯 마리의 비마(飛馬)가 끄는 수레를 내달려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말이 놀라 수레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설령 폐하께서야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으시더라도 지하에서 무슨 낯으로 고조와 태후를 뵈시렵니까?” 빌려 쓰는 말과 수레를 마음 내키는 대로 몰다가 국가와 조상에 죄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일침이었다.

훌륭한 임금으로 칭송받는 문제도 한 해 전에 했던 말을 망각하고 이랬던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준마가 끄는 수레나 비싸고 성능 좋은 차가 있으면 한번 뽐내며 달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지 않던가?

한 문제가 다른 임금과 다른 점이라면 신하의 충언을 듣고는 자기의 뜻을 굽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문제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던 원앙은 결국 문제의 눈 밖에 나 지방으로 좌천되고 만다.

“임금 노릇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공자의 말씀은 이래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정감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주어진 권한은 남에게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는 가정(稼亭)의 말을 곱씹게 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크게 보면, 어차피 우리의 삶도 잠시 빌려 쓰고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감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빌어 그 뜻을 부연해 보았다.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김낙철
한국고전번역원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