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땅을 내려다보다

고전산책
한양 땅을 내려다보다
  • 입력 : 2024. 02.29(목) 12:41
  • 영암일보
남산 타워에 올라가면 서울을 빼곡하게 메운 아파트와 빌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학 입학을 위해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어, 남산에서 서울 전경을 바라보며 저 많은 건물 중에 왜 내가 머물 곳이 없을까 하는 한탄을 했었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그런 대사가 나오는 걸 보면 그곳에 올라가면 흔히들 하게 되는 생각인 것 같다.

18세기 신유한도 비슷한 시선으로 목멱산, 지금의 남산 아래를 내려 보았다.
물론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당시 한양은 큰 도시로 성장하던 무렵이라 도성 안은 빼곡하게 궁궐과 관아, 민가,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김수철이 그렸다고 전하는 <한양도성도>와 신유한의 시선에 포착된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유한은 시골 서얼이라는 도성 밖 출신이었기에 도성 안을 조금 더 냉철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그가 전한 한양의 인상은 빽빽하고도 ‘좁은’ 곳이다. 한양 땅은 역대 중국 수도와 비교할 수가 없이 좁은 곳인데 이곳에서 덕업, 지혜, 문장이 훌륭한 자, 어진 수령들이 모두 배출된다.

자신과 같은 먼 시골 출신은 인재 안에 낄 수가 없다.
애초에 타고난 재능이 다를 리가 있겠는가. 문화와 교육이 경화에 집중되어 있는 탓에 한양 선비들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성장하여 원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한편 지방 선비는 아무리 애쓴들 도저히 장벽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경화와 시골은 그 차이가 이미 현격하여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진다. 더구나 당시는 선비들이 갑과 을로 나뉘어 치열하게 당쟁을 일삼던 때였다.

특정 당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 그쪽 인재만을 수용하였다. 좁디좁은 땅에 장벽을 겹겹이 친 곳이 바로 한양이다.

신유한으로부터 300년이 지난 오늘, 그가 느꼈던겹겹 장벽이 과연 사라졌을까.
지역과 가문이라는 장벽은 아닐지라도 오늘날 또 다른 장벽이 곳곳에 놓여있다.

청년들은 원하는 일과 삶을 성취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높은 진입 장벽을 호소한다.
여성들도 여전히 뚫지 못하는 견고한 유리천장을 머리에 이고 있다.

혹자는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능력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장벽 안의 삶에 익숙하여 장벽 자체를 망각한 것은 아닌지, 장벽 밖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 더 귀 기울여 보아야 할 것이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